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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im Nov 30. 2017

"네가 너무 미웠어. 하지만 넌 나의 전부였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Review

**본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 참여 후 작성한 글입니다.


그때 내가 그녀를 밀었을까
그녀는 밀렸다 생각했을까
시달리다 보면 누굴 밀었다는 착각에 들고
정말 밀었다고 믿기에 이른다     

이규리 – <펭귄 시각> 중에서.


  여기 두 친구가 있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것은 사랑뿐만이 아니다. 우정도 있다. 평생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미워했으며 원망하고 사랑했던 두 친구의 아름다운 시작과 이별들이 이 영화에 있다.


  안생과 칠월은 열세 살에 처음 만났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둘은 서로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 마치 숙명 같았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 이야기만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소중한 친구가 어떻게 당신에게 왔는지, 함께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존재가 새삼스러워진다. 어린 시절의 친구는 더더욱 그렇다. 성향이 달라도, 취향이 맞지 않아도 아무런 의심 없이 친구가 된다.


  안생과 칠월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달랐다. 칠월에게 안생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없는 자유로움과 반짝이는 빛남이 있었다. 안생 곁에서 칠월은 유쾌했고 용감해졌고 바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안생에게 칠월은 따뜻한 기둥이었다. 어지럽게 흔들릴 때 그녀의 존재는 위로가 되었다. 칠월 곁에서 안생은 평범한 13살의 소녀로 웃을 수 있었다. 자신의 뾰족함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칠월 덕에 안생은 괜찮아졌다. 화목한 가정에서 정해진 것만 같은 인생의 길을 걷는 칠월과 어릴 적부터 혼자였던 안생은 존재를 나누는 서로의 전부였다.

  영화는 작가 이름이 칠월인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서로의 우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어느 때는 안생이 칠월의 그림자였고, 칠월이 안생의 그림자였다고 설명한다. 그보다 더 정확한 설명은 없을 듯하다. 그림자는 몸과 하나지만 결코 만날 수도 합쳐질 수도 없는 관계니까. 전부를 나누던 그들이 아무리 서로에게 유일해도 하나의 존재가 될 수 없듯이. 


  그들의 우정은 열일곱, 칠월의 첫사랑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어려워진다. 직업학교에 진학해 일찌감치 일을 시작한 안생과 달리 칠월은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해 학업에 열중하며 대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들은 늘 함께였고, 서로의 첫 번째였다. 칠월은 학교에서 소가명이라는 남학생에게 빠진다. 안생은 칠월의 사랑이 궁금하고 염려되어 가명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에게 깊이 끌린다. 영화는 안생과 가명이 서로에게 직감적으로 끌리는 미묘한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잘 표현한다. 가명은 칠월과 연애를 시작하고, 셋의 관계는 미묘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가명과 안생이 서로에게 마음이 있음을 칠월이 알게 된다. 


  그렇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안생은 떠난다. 더 이상 가명과 칠월 곁에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칠월은 자신이 아무리 안생을 사랑하더라도 안생을 잡진 않는다. 잡을 순 없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하려는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고, 그보다 자신을 위해서이다. 가명을 좋아하는 자신 때문에. 안생의 눈빛에서 칠월은 안생의 진심을 읽는다. 하지만 안생에게 가지 말라고, 함께 있자고 말해주지 못한다. 떠나는 기차에 안생을 태워 보내며 칠월은 이별을 배운다. 스무 살이었다. 자신의 전부와 같던 친구에게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자신을 위해 떠나는 친구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에 칠월은 스스로 실망하고 절망한다.     


  우정이라는 이름의 관계는 수많은 단어들과 맞닿아 있다. 미움, 질투, 경쟁심, 서운함, 연민, 동경, 그리움, 집착, 추억, 위로, 욕심, 유일, 실망, 죄책감, 기대 등등. 사랑에 다치면 우리는 문에 찧은 듯 바로 아픈 자리를 알아볼 수 있다. 한참 앓고 나면 아물고, 아물어가는 과정도 세세히 느낀다. 그러나 우정으로 생채기가 나면 우리는 종이에 베인 듯 앓는다. 섬뜩하게 순간이 지나가고 후에 찌릿하게 아파온다. 아플 줄 몰랐는데 너무 오래 아프다. 어느 정도로 깊이 베인 건지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도 무섭다. 그 속에는 너무 못난 자기 자신이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 우정이라는 사랑은 그 큰마음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상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기에 고되다.


  칠월과 안생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달라진다. 원래 다른 삶의 그들은 생활이 함께였지만, 안생이 떠난 후 4년을 그들은 만나지 못한다. 안생은 돌아올 수 없었다. 떠돌아다니며 그녀는 세상을 배우고 삶을 겪었다. 여자라는 사실을 이용해 허기를 넘기기도 했으며 크루즈와 밤무대 등 온갖 일자리를 전전한다. 그녀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헤맸다. 칠월이 채워주던 자리를 넘어 자신을 품어줄 공간을, 상대를 갈구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고 공허했다. 삶은 유독 그녀에게 가혹했고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바람을 피우거나, 결혼을 앞두고 죽어 그녀에게 정착을 주지 못했다.


  칠월은 정해진 길을 가며 은행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녀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다.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지 않는다. 늘 편지를 보내오는, 그러나 답장을 보낼 정해진 주소가 없는 안생이 돌아올 곳이 되어주기 위함이었고, 딸로서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며 무엇보다 안생이 양보하고 간 삶을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칠월은 마음 한구석에 자신이 안생을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삶 대신 그녀가 마련해준 삶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안전한 터전에서 자라온 그녀는 흔들려도 자유롭고 싶었다. 속에 있는 열망을 따라나서고 싶었다. 

  서로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방황했고 어쩌면 불행까지도 했다. 그 불행의 가장 큰 부분은 서로가 없다는 부재, 그로부터 오는 그리움이었다.    


  떠도는 삶에 지친 안생은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칠월에게 이야기한다. 집에 가게 해달라고. 23살 다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서로가 가장 익숙하고 편하다. 예전처럼 장난을 치며 웃지만 달라진 삶에서 온 간극과 가명이라는 감정의 골은 터지고 만다.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상처가 될 말들을 서로 쏟아내고는 떠난다. 이번에는 슬픈 이별이 아니라 단절이었다. 안생이 떠났고, 칠월은 돌아보지 않았다. 

  각자의 삶에 너무나 오래, 서로 없이 시달리던 그들은 서로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찌들어 있었다. 안생은 은 가명에 대한 감정을 씻을 수 없는 죄처럼 괴로워했고, 칠월은 자신에게 가명과 삶을 양보한 안생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불행한 삶에 죄책감까지 얹어 자책은 원망이 되고 그리움은 가시 박힌 말들로 뱉어졌다.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른 채, 누구에게 과연 잘못이 있었는지도 더 이상 모르겠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관계 속에서 둘은 울부짖는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을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계란 없다. 있기를 바라는 마음조차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나누고 그래도 한결같이 똑같을 수 있는 관계는 없다. 아무리 시간을 많이 쌓은 관계라도 달라지는 삶을 이겨낼 수 없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 생겨버리고, 솔직함보다 배려가 앞서야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하나를 말하기 위해 스물의 설명이 필요한, 그래서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도 온다. 누군가와 함께라는 사실이 더 이상 일상이 될 수 없을 때 우리는 이별을 배우고 부재를 견디는 법을 배운다. 

  변하는 삶과 사람 속에서 똑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변하는 삶과 사람 속에서도 곁을 지키는 존재로 남는 것만이 가능하다. 때론 실망하고, 때론 이해할 수 없고, 때론 벽이 생기고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의 소중함 뿐이다. 안생이 칠월에게 전부이고, 칠월이 안생에게 전부인 것. 저릴 만큼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것. 그것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안생과 칠월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예쁘게 끝을 맺는다. 27살에 죽음을 맞은 칠월을 위해 안생은 칠월이 진정 원하던 삶을 찾아 떠나는 결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 소설 속에서 칠월은 안생이 떠돌았던 곳들을 다니며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 그녀를 이해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축복해준다. 칠월이 원하던 흔들리고 자유로운 삶. 

  서로가 미처 하지 못했던 다른 삶에 대한 존중과 응원, 하나인 듯 살았던 어린 시절과 다른 방법이지만 같은 사랑으로 함께 하는 일을 소설 속에서 해준다. 소설 속에서 이제는 안생이 칠월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언제든 돌아올 곳, 늘 어딘가로 편지를 보낼 곳.      


  영화는 드라마 그 자체이다. 주인공 둘의 연기에 주목이 되었고, 그들의 삶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이야기에 힘이 있다. 관객에게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인물의 반응과 감정에 몰입한다기보다 우리는 주어지는 반전과 진실에 놀라고 무너지게 된다. 예쁘고 절절한 우정 이야기를 섬세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무너졌을 모습, 진정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가 어려운 자신에 대한 위로가 된다.


  칠월이 죽음을 앞두고 안생과 나란히 누워 읊조린 말이 있다. “네가 미웠어. 그렇지만 내 임신 소식을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었던 사람도, 제일 보고 싶었던 사람도 너였어. 넌 나의 전부였어.”

  안생은 소설을 통해 칠월과 작별한다. 열세 살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소울 메이트를 떠나보낸다. 평생 그리워할 유일무이의 칠월과 안생, 소울메이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여는 시구: <펭귄 시각>, 이규리,「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2014, 문학동네


영화를 읽어 내고 써 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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