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끄러울 때는 하염없이 걷는다.
하루는 배터리가 나가서 음악 없이 걸었다.
그런 순간이 있다.
내 발은 걷고 있지만 나는 아득한 생각 속을 걷고 있을 때.
불현듯 뒤통수에 대고 차 한 대가 지나간다.
슝,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그어지며 어떤 파편의 기억이 박혀 들어온다.
그리고 속절없이 무너진다.
실은 내가 아주 오만했다든가, 그때 괜찮지 않았다든가.
내가 나를 더 돌보았어야 했다든가, 내가 너를 너무 다치게 했구나라든가.
그 시절이 시작인 줄 알았는데 절정이었다든가.
그래도 한 번쯤 돌이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허락되지 않겠구나, 라든가.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게 진짜였구나,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왜 뒤통수에 대고 지나가는 차 소리 마냥 그렇게밖에 올 수 없는 걸까.
쓸모없는 것들에도 아름답게 부딪히던 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쓸모없음으로 아름다움을 빚어낼 일이 없을 것이다.
슬퍼하지 않고도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시 걷는다.
제목은 김민정의 시집「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2016 에서 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