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증명사진을 찍는 날. 아기는 토끼 귀가 그려진 나무의자에 앉았다.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셔터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불빛에 온 신경이 쏠렸다. 사진관 사장님의 익숙한 손놀림 몇 번에 다시 정면을 향하는 아기의 눈길.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과 눈을 맞추려는 아기의 고개는 왼쪽 오른쪽으로 바삐 오간다. 그러다 봄바람처럼 살살 움직이기 시작하는 몸.
“너도 재즈를 좋아하는구나?”
사진관의 PC에는 ‘겨울 카페 재즈’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고개를 까딱까딱. 세상에 생긴 지 2년이 채 안 된 몸이 리듬을 탄다. 음악이 그 몸의 어떤 부분을 두드린 걸까. 인생의 봄이 한창인 그 몸에는 지금 재즈가 흐르고 있다.
집에 돌아와 아기를 재우고 돌보미 선생님을 맞이한다. 아기는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선생님의 돌봄을 받고 있다. 보통 선생님이 계시는 네 시간 중 절반 정도는 낮잠을 잔다. 그동안 선생님은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신다. 소파 옆 협탁에 선생님이 보실 책을 챙겨두는 게 요즘의 새로운 즐거움. 한 강 작가의 소설을 잔뜩 쌓아두었다가 이번엔 서재 깊숙한 곳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 책의 표지를 훑어보다 책을 열어 힐끔 본다. 책날개에는 책 속 문장이 보라색 글씨로 쓰여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멜로디가 있다
돌보미 선생님께 책을 건네고 잠깐 산책을 나왔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즐거움. 외출 나갈 때 들고 나갔던 가방 몇 개를 차례로 뒤적인다. 네이비 가방에서 발견된 하얀 이어폰 줄. 낚싯줄 감듯 당겨 이어폰을 쑥 꺼낸다. 다들 무선이어폰을 쓴다지만 내겐 버거웠다. 충전하는 걸 매번 까먹고, 꼭 한 쪽씩은 잃어버리고, 블루투스 연결이 끊기면 작게 한숨을 쉬며 이어폰을 내려놓기를 여러 차례. 새로 산 휴대폰에는 이어폰을 꽂는 곳도 없어, 꽤 오랜 시간을 적막 속에 산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된 사실. 휴대폰을 충전하는 곳에 꽂으면 되는 유선이어폰이 있다는 걸. 그 길로 로켓보다 빠른 배송을 받아 신나게 쓰고 있다. 꼬인 줄을 풀어 두 귀에 차례로 꽂고 옷소매가 걸리지 않게 돌돌 말아 주머니에 넣는 맛. ‘이게 음악 듣는 맛이지’ 하며 혼자 뿌듯해한다.
오늘의 멜로디는 록. 록밴드 엔플라잉의 음악을 몇 주째 듣고 있다. 노래도 노래지만 두 귀에 가득 차는 드럼소리가 너무 좋다. 쿵쿵.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울린다. 종일 같은 모양으로 웅크린 장기들이 진동한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는 안 나던 생각도 종종 난다. 누구에게 그런 생각을 종알종알 떠들고 싶다. “저는요. 있잖아요” 하면서. 누구와 이야기 나누는 상상을 하며 신나게 비탈길을 내려온다. 가끔은 미끄럼틀을 걸어 내려가는 아이처럼 다다다 뛰기도 한다. 춤을 추고 싶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연신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한다. 혼자 코인노래방이라도 가서 힘껏 추다 올까 생각하지만, 생각하면 또 부끄럽다. 긴 치마를 입고 오길 잘했다고, 아무도 내가 무릎으로 춤추는 걸 모를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그네 타듯 리듬을 탄다.
아기가 처음 리듬을 타던 날을 기억한다. 무엇이든 잡고 일어나려 하던 아기가 어느 날 두 손으로 소파를 부여잡더니 진지하게 리듬을 탔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전주의 악기소리에 맞춰 상체를 앞뒤로, 그다음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리듬에 맞게 흔들리던 고개는 어느 순간 리듬보다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고 돌리다 꺄르르. 아기의 웃음이 터졌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남은 아기의 몸은 이리저리 한참을 흔들거렸다.
흔들리고 싶은 몸. 똑바로 서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싶은 몸. 멜로디가 그 몸을 두드린다. 가만히 적막 속에 머물러 있는 몸도 자세히 들어보면 소리내고 있다. 나를 움직여줄 멜로디를 만나고 싶다고. 멜로디에 빠지다 보면 알게 될 테니까. 내 몸에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 하고. 이 부분은 이런 말을 하고 저 부분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그렇게 천천히 알아가라고 우리가 생기기도 전, 누군가 우리 몸에 멜로디를 심어놓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