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 교사 생활 하는 것이 참 행운이다. 아버지께서 교직에 계실 땐 매주 반상회에 나가신 적이 있다. 유신을 지지하자는 홍보 때문으로 기억한다. 동아일보 광고 사태가 있었을 때 십 년 이상 구독하셨던 한국일보를 끊으시고 동아일보로 바꾸셨다. 그러셨던 분이 단지 교사라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유신 지지를 홍보해야만 할 상황으로 몰렸을 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 때 한국 학생들에게 일본말 쓸 것을 강요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해야 했던 교사들도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민주주의 시대이고 단지 교사라는 이유로 정권의 이익 홍보에 강제당할 일이 없으니 다행 중 다행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일이 닥치면 맞서 거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이 강요되고 또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왜 과감하게 맞서지 못했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폭압 때문일 것이다. 바로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그 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본다. 힘은 무력의 형태뿐 아니라 경제력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아무리 인격을 강조하고 자율을 강조해도 인간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직여지는 존재임이 점점 분명하게 다가온다.
내가 학생들에게 인간은 자율적인 존엄한 존재이니 자율적으로 규범을 지키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내가 신호를 지키는 것은 신호를 단속하는 공권의 힘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강제력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힘에 대한 두려움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율적인 의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분명 그런 분들은 있다. 없다면 우리 사회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굳이 역사적 위인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그분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오늘도 주변을 기웃거리며 그런 숨은 영웅을 찾아본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