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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Apr 16. 2022

파티 게스트하우스에서 혼밥한 것에 관하여

제주도 혼자 여행 - 1

여유와 외로움은 한 끗 차이



#현실과 비현실 어딘가

 짧은 비행, 창문을 열자 한라산에 걸친 아침 햇빛이 어두웠던 기내에 스며들었다. 수많은 오름들을 내려다보니 비로소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뭐랄까,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직후부터 '제주도'는 내게 일종의 마취제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제주도 갈 거니깐...'하고 처방을 내렸고 조금 더 무리하더라도 '그때 쉬면 되지', 라고 주사를 놓곤 했다. 그러나 막상 제주도에 도착하고 나니 이 사실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자, 오긴 왔어. 근데 지금부터 뭘 할 거야?



#혼자에 익숙해지는 중

 공항에 내려 정신없이 렌터카를 수령하고 소위 맛집이라고 하는 식당에서 '몸국'이라는 국밥을 주문했다.


"일행 있으세요?"

"아뇨, 혼자 왔어요."

"저쪽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2인 전용 자리에 앉으면서 보니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았다. 인파가 몰리는 맛집에서 너무 당당히 1인분을 주문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식당 아주머니, 손님 그 누구도 내게 그리 관심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래,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이 나 혼자 뿐이겠어?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아직 혼여(혼자 여행) 초보인 나로서는 아직도 이런 사소한(?) 눈치를 보게 된다. 그나마도 안동에서 혼자 찜닭을 시켜먹는 도전에 성공하고 나서야 이 어색함이 풀렸지.


이호테우 해변

#혼잣말도 말이야

 소화도 할 겸 가장 가까운 해변 이호테우 해변을 걸었다. 날씨는 생각했던 만큼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설레기 시작했다. 속 시원하게 바람이 불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와아~ 진짜 너무 좋은데?"

...

...


 아, 맞다. 나 혼자지? 그렇지만 꽉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이 통쾌함을, 이 순간의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 진짜 이번에 나 너무 힘들었잖아. 어쩔 땐 도망치고 싶더라?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갤러리를 뒤적이다 꿈이 가득했던 예전의 내 모습들과 마주치면, 정말이지 균형을 잃고 부서질 것만 같았어.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니... 지금 이 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한 순간이라는 걸 다시 다짐하며 매일 밤 잠에 들었어.


 저 멀리서 시끌벅적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소리를 들으며 복잡한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파도소리가 들릴 때, 그래도 그 순간을 이겨내고 여기 서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좋게 사람이 없던 '썬셋 클리프' | 썬셋을 볼 날씨가 아니긴 했다.


#여유로운 카페

 이호테우 해변과 애월 카페거리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인적 드문 해변을 걷다 활기찬 카페거리로 나오니 연령대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여기가 그 '힙.한. 제주도' 구나? 차를 세워두고 카페거리 이곳저곳을 걸었는데 바닷가와 맞닿은 카페들, 크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들은 참 예쁘고 눈길을 끌었지만 이상하게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여유로운 카페들을 좋아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여유로움이란, 사람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분위기가 있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물론 이 요소들을 전부 충족하는 카페를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분위기가 좋으면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니깐. 분위기가 좋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인데 사람이 없다면, 분명 그 카페는 2~3달 안에 문을 닫을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인기 많은 카페에 사람이 없을 때가 있는데, 카페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썬셋 클리프'가 그러했다. 처음 지도앱에서 썬셋 클리프를 봤을 때 이름부터가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 같아 애초에 논외대상이었지만, '썬셋'을 구경할 수 없는 흐린 날씨와 아침과 점심 식사 사이 애매한 12시라는 시간이 맞물려 '여유로운 카페'가 된 것이다. 


 썬셋 클리프에는 바다와 마주한 1층 테라스 자리와 카페거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2층 루프탑 자리가 있었다. 그중 나는 1층에 크게 틀어놓은 EDM음악이 조금 부담스러워 2층 루프탑으로 향했다. 적절히 들리는 음악과 파도소리, 멀리서 날아오는 희미한 사람들 소리가 어우러졌다. 루프탑 카바나에 발 쭉 뻗고 혼자 누워 이 여유를 잠시 누리기로 한다. 아... 좋다...


 잠시, 핸드폰 삼각대를 세워두고 여유를 만끽하는 내 모습을 찍어보려 했지만 이내 싫증이 나 접고 만다. 여유를 느끼면 느꼈지, 굳이 또 남한테 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건 뭐람. 이 여유를 간직하고 싶다면 그냥 지금 혼자임을 즐기기로 하자. 그렇게 한참을 파도소리를 듣다가 선잠에 들었다. 몽롱함에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한참을 헷갈리다가 아무렴 좋아...


중간에 들린 독립서점, <책은선물>. 작은 규모지만 읽을만한 책들이 많아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

 혼자 여행을 떠나면 좋은 점이 있다. 여럿이서 떠나는 여행은 함께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더라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이 지금 여기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나?', '이 음식이 안 맞으면 어떡하지?' 등등의 사소한 걱정을 하게 되는데, 혼자는 좋으면 머물고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다. 그래,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렇게 카페를 떠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 이유는 가성비도 가성비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우선, 게스트하우스의 사람들은 새로웠다. 각자의 터전에서 각자의 이유를 안고 떠났지만 결국 여행이라는 같은 목적으로 한 곳에 모이게 된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예컨대 회사/학교/친구들에게서는 흔히 들을 수 없는 다양한 삶의 경험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들로부터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돌이켜 내 안의 새로운 자극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게 받은 에너지를 일상으로 가져와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여행의 목적 중 하나다.


 또,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은 솔직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그들과는 할 수 있었다. 낯부끄러운 꿈, 은밀하지만 솔직한 욕망, 가식적인 관계에 대한 회의... 이런 내면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부담이 없다. 이들이 굳이 내 지인을 찾아와 비밀을 쑥덕거릴 위험도 없으며, 내가 나눈 진심을 편견으로 왜곡시킬 이유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나를 모르기에 가능한 대화들이었다. 무언가로부터 떠나왔다는 그 작은 공통점이 서로를 응원하게 만든다. 그건 결국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격이기도 하니깐.


게스트하우스에서 홀로. 게스트하우스 자체는 편안하고 깔끔해서 좋았다.


#파티 게스트하우스에서 혼밥한 것에 관하여

 그렇지만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내가 첫째 날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나 혼자 뿐이었다.

 
"어제는 손님이 정말 많으셨는데 오늘은 혼자시네요!"

"네, 방에서 혼자 편하게 잘 수 있겠네요, 하하!"


 참...함께 하는 저녁식사가 필수 계획은 아니었지만 막상 못한다고 생각하니 꽤나 실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여기 게스트하우스는 도심지와 떨어진 곳에 있어 단체로 식사를 하지 않는 이상, 편의점에서밖에 저녁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오늘은 정말 지독히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구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외로움이 짙어 당황했던 하루였다. 내가 느끼고 싶었던 여유는 외로움과 정말 한 끗 차이구나.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즉석 치킨과 맥주 한 캔을 사서 돌아왔다. 원래라면 붐볐을 로비에서 식은 치킨을 홀로 느릿느릿 뜯으며 여유 아닌 여유를 누려본다. 여유로운 건지, 외로운 건지. 



- 계속


@글쓰는 차감성




홀로 제주도 여행 | 첫째 날 동선 (feat. 지극히 개인적 생각)

- 제주 국제공항

- 제주 알프스 렌터카 | 최저가에 별문제 없이 잘 타고 다님

- 김희선 몸국 | 익숙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새롭지도 않은 몸국. 얼큰해서 좋긴 했다.

- 이호테우 해변 | 시간이 없다면 다른 해변으로 직행할 듯. 

- 썬셋 클리프 | 사람 없을 때 한정, 제주 카페 중 가장 좋았음. 사람 많으면 순위권 수직 낙하.

- 애월 감성 | 진짜 너무 맛있는 수제버거 가게. 조용해서 더 좋음.

- 책은선물 | 제주에서 읽을 책 2권 구매. 작은 규모지만 읽을만한 책이 꽤 많아 고르는데 시간 좀 걸렸다.

- 싱게물 공원 | 물길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근처 풍차만 좀 구경하다가 돌아옴.

- 조브라더스 게스트하우스 | 게스트하우스 자체는 좋았는데 혼자여서 외로웠음. 그냥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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