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안 하고 지금까지 뭐 했어?"
무슨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다.
대학 동기들이 취직 준비를 시작할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창업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셜 살롱(ex. 영화, 독서, 전시 모임 등)을 제대로 해보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문화예술 콘텐츠가 주는 여운을 나누는 것이 좋았고, 모임을 통해 '더 잘 살 용기'를 얻었다는 후기들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온라인에서 모객하고 티켓을 판매하려면 통신판매업 신고를 해야 했고, 다른 단체와 협업을 하려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창업했다. 창업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좋아하는 걸 더 잘해보려고 한 창업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코로나라는 듣도보도 못한 질병이 확산됐고 '살롱'은커녕 모임 자체를 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1년을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주는 심정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창업하기까지 걸렸던 시간과 노력에 비해 폐업은 '원클릭'으로 간단했다.
팽팽하던 긴장감이 끊어지자 삶에 무기력이 찾아왔고 일상은 루즈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지속했던 일일 촬영알바와 스탭 일 덕분에 '뭐라도 한다'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할 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도 목표도 없었다. 친구들은 많이 들어본 회사들의 인턴을 시작했고, 몇몇은 어디에 취직했다더라, 하는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고3 입시 이후 처음 드는 원초적인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길은 있었다. 대기업 취준과 같은 잘 닦여진 로드맵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운이 좋게도 스탭 일로 만났던 지역의 문화기획자 분 밑에서 기획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창업 때 어려워 했던 공모전, 기획서, 지원서 등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대표님의 어깨 뒤에서 끄적끄적 그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됐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고, 나는 또다시 '운이 좋게도' 촬영알바에서 유튜브&강연 기반 스타트업을 한다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의 비전과 목표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은 그런대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회사에 와서 제대로 이야기해 보자는 감사한 제안을 주셨다. 나는 그게 면접인지도 모르고 회사로 찾아갔고, 2주 후 그분은 내 대표님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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