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감성 Sep 06. 2023

타이트한 여행 일정을 벗어던지고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여기 다시 올 일이  있겠어? 한 군데라도 더 가봐야지!"

해외여행을 다닐 때면 일정을  꽉꽉 채워 가곤 했다.

앞으로 또 바쁠 텐데 언제 다시 여기 올 수 있겠어.



틀린 말은 아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갑작스레 취직을 할 수도, 알 수 없는 인연을 만날 수도, 크게 아플  수도.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내 여행을 항상 급박하게 만들었다. 알찬 일정은  좋았지만 성큼 다가오는 다음 체크 리스트를 준비하다 보면 '지금'을 즐기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음에 오면 돼!

이번 호주 여행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을 여행하는 일정은 타이트하지만, 도시마다의 일정은 여유롭게 잡기로 한다.

주립 도서관에 가서 현지 학생들처럼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하고, 숙소 안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이야기도 나눠본다. 타이트하게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움직이는 일정 속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



허락된 일정이 더 길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과 타협한  여행 일정 속에서 느긋함이란 사치를 부리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더 찍어야 할 것 같고, 더 맛있는 걸 먹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도서관 앞 잔디밭에 누워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든다.


그래서 이 여유로움에 익숙해지기로 한다.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은 이미 한국 어딘가에서 많이 느낀 감정, 굳이 이곳까지 와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다.



멜버른  야라강을 내다보는 이름 모를 펍을, 리뷰를 보지 않고 들어가는 대담함. 그리고 어중간한 시간대에 빠르게 내달리는 유람선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다른 곳에 있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보다 지금의 나에 조금 더 집중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홉수 취준기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