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들 취미: 언어공부에서 특기: OO어로 전직 가능할까요? @@@
어학 능력 (21년 이후 기록만 인정.)
아무리 괄호 부분을 노려봐도 21년이 19년으로 바뀌지도 않고 아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력서의 비어 보이는 어학 실력을 감춰보겠다고 적어 내곤 했던 JLPT N3는 2019년의 작품이다. 결국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는 나는 그 항목을 빈칸으로 넘어간다. 지금 당장 점수를 만들 수 없으니 내 이력서를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입주하지 못한 일본어를 입주시킬 항목을 찾아야 한다. 누가 토익은 성실성을 대변하는 항목 이랬던 가. 그 흔한 점수가 없으니 나에게 일본어는 성실성을 찾기 힘들어 보이는 이력서에 그래도 나 대충 살지 않았다고 주장말만 한 요소를 담당하는 녀석이다. 그러니 인정 기간 지났다고 이 녀석을 빼버리는 건 내 이력서에서만큼은 인정머리 없는 짓이다. 그래서 이 어학실력을 입주시킬 차순위 위치를 찾는다.
이력서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마침 비워둔 자리 하나를 발견한다. 취미/특기. 특기는 딱히 쓸 말이 없어 비워두었고 취미는 지원하는 직무에 따라 적합한 걸 적어야지 하고 넘어갔던 항목이었다. 특기로 마우스를 움직이려다 거기서 잠시 또 멈칫한다. 특기? 내가 일본어를 특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잘하나? 나를 어필해야만 하는 이력서임에도 과장할 생각보단 확인 절차가 두려워진다. 소심한 나는 특기에서 아른아른거리던 커서를 취미로 이동한다. 그곳에 일본어가 자리를 잡는다.
물론 언제든지 일본어(취미)에서 일본어(특기)로 전직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먹는다. 그 날 보다 내 이직이 더 빠를 거라는 아주 작은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그리고 자소설을 쓰기 위해 마우스를 움직이려다 다시 취미/특기 란을 바라본다. 취미, 일본어라니. 이 단어는 아무래도 특기로 가야 할 것 같아 잠시 고민한다. 특기는 우대 조건 '홍보능력'에 맞춘 느낌으로 눈 딱 감고 블로그 운영을 적는다. 그리고 일본어는 자소서의 한 항목으로 어필하는 것으로 가닥 잡고 독서, 영화 감상으로 항목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특색 없고 그냥 지나가는 하나의 항목처럼 되어버린 취미/특기 항목이 지금도 아른 거린다. 심심한 이력서의 항목과 다르게 나는 집순이인만큼 취미부자다. 세상에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들이 왜 이리 많은지. 그리고 그런 일들이 많은 만큼 언어 능력은 그 취미들에 항상 따라붙는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재봉을 하다 보면, 그저 영화 감상이 취미더라도 좋아하는 배우가 생기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나에게 취미의 시작이자 끝은 '언어 공부해 볼까?'였다. 그렇게 시간도 있고 아주 조그맣지만 잔소리가 붙지 않는 경제적 자유를 가진 지금 고3시절보다 언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쉽게 따라붙는다. 그렇게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 나는 의외로 언어 공부를 항상 곁에 두게 된다. 필사적이지 않게.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 파인을 좋아할 땐, 영어도 영어지만 스타트렉에 빠져서 클링온어를 잠시 공부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한국어-영어 바이링구얼이라 그 아이돌이 영어를 중얼거리는 영상을 보면서 영어를 결심한 적도 있다. 뼛속 깊은 오타쿠라 일본어 인풋은 차고 넘칠 정도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러시아어가 그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강의를 수강했었다. 대학 시절에는 교양 '초급 00어' 수업을 세일하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듯 들었던 적도 있다.
그 와중에 성과를 보인건 일본어뿐이다. 하지만 그 때 안해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은 나에게 해보고 난 뒤의 후회는 그 순간일 뿐 큰 미련이 남지 않는다. 러시아어는 'rrrr' 발음에 무너진다는 것. 스페인어는 수일치도 못하는 내가 성수일치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걸. 클링온어는 역시 외계어네...^^라는 생각으로 알람을 보내오는 듀오링고를 삭제하는 게 매번 같은 루틴이다. 다음에 다시 시작할 땐 어느 장벽에 부딪힐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부분을 넘어갈 수 있을 때 다시 도전하고 또 새로운 벽을 만나면 잠시 외면한다. 그러다가 다시 도전할만하면 다시 건드려 본다. 취미니까.
나에게 언어는 특기가 아니라 취미인 셈이다. 물론, 그게 웃겨 보여서 이력서에서는 지워버렸지만.
나는 오늘도 유창하게 외국어를 말하는 꿈을 꾼다. 특기에 당당하게 입주시킬 외국어 하나쯤 만드는 걸 목표로 교재를 열어본다. 물론, 그런 거창한 목표에 비해 느긋이 공부한다. 아직 잘하는 언어 없지만 웃기게도 시작하는 배짱만큼은 넘치는. 나는 취미로 언어 공부하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