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자막 여행기
나에게는 5년 전, 학기제 인턴으로 간 회사에서 만난 영화 메이트가 있다. 나보다 2년 후배인 동생과의 인연은 회사 숙소 생활을 하다 새벽 6시 30분에 먼저 출근하는 그 친구와 대화로 시작한다.
"벌써... 출근해?"
당시 7시 30분 아침 영어 수업을 듣고 있던 터라 숙소 내에서도 먼저 준비하는 한명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나보다 먼저 준비해서 출발한 사람이 있었다.
"네. 새벽에 영화를 예매해 놔가지구..."
어색하게 하하. 웃는 소리를 덧붙이며 말한 동생은 영화를 보러 나갔다. 회사에 늦지는 않았고 적당히 보다가 나왔단다. 그렇게 친밀감을 쌓다가 그해 개봉한 <스타트렉3: 비욘드>를 기점으로 이 동생과의 영화덕질이 시작되었다. 내 스타트렉3의 N차관람은 총 8회로 이 8회차 모두 이 동생과 함께했다. 일반 2D, 4DX, 올나잇, 응원상영. 종류도 다양하게 N차 관람을 했었다.
그 뒤로 이어진 마블, 간간히 재개봉하는 해리포터, 다양한 시리즈물 그리고 프로듀스 101, 워너원까지.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철새 같은 덕질에 이 동생도 항상 함께했다. 영화메이트이자 덕질메이트인 셈이다.
코로나로 영화 덕질이 뜸해졌고 각자의 생활반경이 달라져 이전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덕질을 시작한 계기가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다. 8월 퇴사로 다시 취업준비 중이었던 나와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다가 서울에 상경한 동생의 시점이 이 영화와 맞물렸다. 자막으로 이미 한번 봤지만, 원래 오타쿠는 매주 새로운 굿즈 받으러 N차 관람하러 가야 한다.
굿즈 모으는 것도 좋아하고 N차 관람도 상관없다. 특히나 <명탐정 코난>에 한해서는 취향도 비슷하다. 물론 취향이 달라도 상관없다. 나는 팀아이언맨이었고 동생은 팀캡아여서 이 이야기만 나오면 자체 소규모 시빌워가 생기지만, 결국 "그래서 다음 영화는 뭐 보러 갈래요?"로 끝난다.
그래서 중얼중얼. 영화를 보고 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주 굿즈가 공지되면 그때 또 연락한다.
그리고 각자 알아서 잘 살다가 불현듯 연락이 온다.
"홍대 애니메이트에서 코난 카페 하는데 가볼래요?"
카페이벤트는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카페 이후 오랜만이라 잠깐 고민했지만 승낙한다. 만나서 카페 갔다가 홍대에서 조금 놀다가 헤어지자. 두 백수의 만남이 그렇게 정해졌다.
그리고 결과는 입장조차 못했다. 현장입장이 마감되었다는 문구가 우리를 맞이했다. 근데, 얼핏 봤을 때, 딱히 끌리지 않았다. 서서 음료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나 입장을 대기하거나 입장하지 못한 사람이 그 광경을 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저 카페는 신포도야. 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홍대의 적당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온갖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다는 이야기. KBS 한국어 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 방탈출가자는 이야기. 일본에서는 코난 극장판 개봉에 맞춰서 좀 더 본격적으로 여러 이벤트가 있다는 이갸기가 오고 간다.
그러다가 내년 상반기 빅이벤트가 될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언니 내년에 일본에서 코난 개봉하면 보러 갈래요?
<명탐정 코난>은 일본에서 매년 4월 경에 극장판이 개봉한다. 이번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의 마지막은 내년에 개봉할 극장판의 예고편이었다. 그 4월에 맞춰서 영화도 보고 일본의 공식 콜라보 카페도 가보자는 이야기였다. 솔깃했다. 그런데 이 여행에 해결되야 할게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 내용이해는 하나도 못하고 범인 스포만 당해서 오는 거 아니야?"
키득키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는 데, 생각해 보면 나나 그 친구나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언어가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스포 당하는 것에.
"4월에 가서 디즈니나 유니버셜 아니면 지브리도가요."
"그래! 취업하면."
그래, 취업하면.
언어나 스포일러는 고사하고 우리에겐 당면한 아주 큰 과제가 있었다. 있는 힘껏 무시하고 있는. 그래서 이 얼레벌레 시작한 여행기는 조금 안타깝게도 취업에서부터 시작한다.
* 사진출처: 다음 영화 검색(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