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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람 Nov 03. 2023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

소소한 것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세 번째. 나에게 세 번째 취준 기간이 돌아왔다.

막막했던 첫 번째, 자신만만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던 두 번째, 그리고 한결 여유로워진 세 번째 취준 기간이다.


취준 기간이 조금씩 늘어남에 따라 같이 늘어나는 생각이 '내가 잘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머리를 쥐어짜 내봐서 애써 찾아낸 '꼼꼼하다', '성실하다'라는 싱거운 단어를 기준 삼아 꾸역꾸역 말을 늘려 자소서 한 문항 한 문항 채워 간다. 완성된 자소서는 당당함이나 뿌듯함보다는 이걸 누군가 볼 생각에 답답해질 뿐이었다.


그래도 공고에는 꼼꼼함과 성실함을 요구하는 공고들이 있어서 그런 공고들을 믿고 지금의 자소서를 부끄럽지만, 살짝 내밀어 본다. 불합격했다는 메일이라도 받으면 그날 하루는 뒤숭숭해도 하나 끝냈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이력서 넣기 작업을 하다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의 공고를 발견한 날. 고심하고 고심해서 서류제출을 마무리하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와 외출을 했다.

 

"도대체 나는 뭘 잘할까?"


지금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의문을 마치 오늘 저녁 뭐 먹을까 하는 질문처럼 던져본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아야 할 것이 나인데도 이 질문에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렇게 작아진 나도 큰일인데 한없이 관대하던 기준도 이 질문에는 한없이 그 기준이 높아진다. 카페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가 내 말을 들은 친구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서 잠시 나를 바라본다. 어, 이렇게 집중할 일은 아닌데?


"네가 잘하는 거?"

"응. 꼼꼼하다 성실하다. 그런 거 말고 뭘 자소서에 쓰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문을 연 친구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너는 주어진 정보 도식화하는 걸 잘해. 정보를 주면 행과 열에 어떤 값을 어디에 넣고 어떤 식으로 표를 그려야 할지 고민해. 그냥 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정보가 왜 필요한지 빨리 이해하고 그 기준에 맞춰서 보기 좋은 표를 만들어내. 그리고 툴 적응 능력이 좋아. 그냥 툴 적응 능력이 좋은 게 아니라 그걸 내 삶에서 어떻게 이용할지 계속 고민하고 적용하려고 해. 노션이나 아웃룩 같은 것도 바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게 사용하거나 기능을 찾아서 활용하잖아."


그런가 싶은데 갑작스럽게 칭찬 폭격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한국인. 겸손이 미덕이라고 몰려오는 칭찬에 살짝 한걸음 빼봤다.


"근데 다들 아웃룩에서 플래그 찍거나 메일 구분하는 건 다 하잖아."

"난 안 써."

"난 해야 해 안 그러면 까먹으니까. 그래서 쓰는 거야."

"나도 까먹어. 그런데도 안 써. 굳이 그런 기능을 찾지 않아."


오……. 한껏 신난 칭찬에 살짝 기분이 올라왔다. 기회를 틈타 고민하다 고민하다 적어낸 취미/특기까지 주제에 올렸다.


"그래? 나 이번에 지원한 곳에 취미랑 특기 뭐 적었는지 알아?"

"뭐? 방 꾸미기? 너 도식화해서 방 꾸미는 거 좋아하니까."

"한 글자만 맞았어."

"방탈출?"

"응. 그리고 원래 특기에 엑셀 함수 만들기 하려다가 리뷰 쓰기라고 바꿨어."

"잘했네. 면접 가게 되면 흥미로운 질문받을 수도 있고 방탈출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마이너스도 아닐 테고. 취미랑 특기가 이어지니까."


이 친구에게 항상 하는 소리가 있다. "너는 다른 사람한테는 유하면서 너한테는 너무 엄격해." 그런데 그 말을 나에게 돌려줘야 할 판이다. 자소서 앞에만 서면 조금 날 꾸며낼 생각은 하지 않고 매번 '난 잘하는 게 없나?' 이러고만 있었다. 나는 분명 잘하는 게 있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매번 취준 앞에서 답을 잃고 헤맨다.


그제야 몇 달 전 글쓰기를 결심했을 때, 생각했던 주제가 하나 떠오른다. '표 그리는 마음'. 이 친구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도식화를 잘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었다.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말에 동의도 했다. 정작 나를 자랑해야 할 때 떠올리지 못했지만. 그래서 조금 웃긴 주제지만 내가 표를 만들 때 했던 생각 들을 글로 남겨갈 생각이다.


당신은 무엇을 잘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물음에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며 이 작은 공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정보를 찾으면 이렇게 고민하고 보여줄 줄 아는 사람.

내 장점을 정확하게 말해낼 수 있는 사람.

나를 잘 알고 있는 당당한 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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