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장자 수업>을 읽으면서 밑줄 친 것을 중심으로 조금씩 이야기해보려 한다.
제자백가라고 불리던 사상가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말을 따르면 국가나 개인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길', 즉 '도'라는 말이 등장한 겁니다.
제자백가라 불리던 사상가들이 기본적으로 부국강병, 개인의 치열함을 이야기하는 줄은 몰랐다. 그저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했겠지, 정도였는데 그 뿌리가 그런 거였다니.
개인의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국가입니다.
이건 맞는 말 아닌가. 국가, 기업 등 이른바 돈이든 뭐든, 주는 곳에서 우리의 쓸모를 정하는 거다. 나 역시 그에 부응하고자 노력을 했으나 '왜 그래야 하는가?'에 매번 부딪혀 방황을 했었다. 그렇게 사는 건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항심'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의 나는 일종의 사회부적응자였다. 사회에 적응해야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논리 아래 부모님도, 선생님도, 많은 사람들이 다독이기도 하고, 때론 야단을 치며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늘 겉돌았다. 돈은 필요했지만 적응하긴 싫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것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적응하려고 애써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아웃사이더의 결과가 지금이다. 누가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동물보호단체 중에서도 아웃사이더다. 어찌 보면 말이다.
그러나 장자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랏? 내가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라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부국강병의 논리 자체를 문제 삼고 이를 극복하려 한 소수의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 주자가 바로 장자였습니다.
쓸모가 사실은 우리 삶을 파괴할 수 있고, 쓸모없음이 오히려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역설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