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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Sep 17. 2024

쓸모없어지면 죽어야 하는가(변신을 읽고)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벌레'라고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아 '카프카'로 검색했더니 책 제목이 '변신'이었다. 예전에 읽긴 읽었는데 '애초에 사람이 어떻게 벌레로 변신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책을 집어던졌기에 '벌레'라는 기억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다시 읽었을 땐 흥미로웠다. 그래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어떻게 되는 건데? 궁금했다. 


고명환 작가님은 <고전이 답했다 :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에서 고전이란 형태가 없다고 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변하는 게 고전이라고. 그래서 고전은 은유와 비유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쓸모없어지면 죽어야 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쓸모'는 인간 사회, 더 작게는 가정에서 뭔가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거다. 돈을 벌든지, 살림을 하든지 뭐든 말이다. 그런데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카프카는 최대한 혐오스럽게 만들기 위해 '벌레'를 선택했을지 모른다. 


어랏. 이 또한 '장자'와 연결되지 않는가? 


강신주 작가님은 개인의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국가이며, 우리는 국가가 원하는 인간으로 개조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가 딱 그 짝이다. 


https://brunch.co.kr/@hongnanyoung/760

https://brunch.co.kr/@hongnanyoung/761


장자가 무엇을 계속 이야기하는지는 아직까지 잘 몰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얼마 전에 읽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도 <변신>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장자와 통하고 있음을 쪼오끔 느끼고 있다. 


국가, 사회가 원하는 인간이어야 한다면 그러지 못한 나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죽는다고 이 사회에 변화가 있을까? 소위 말하는 쓸모없는 사람들이 전부 없어지면 이 사회는 훨씬 나아질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장자의 말대로 '쓸모없음은 알량한 쓸모 있음이나마 가능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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