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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22. 2024

"이혼보단 파혼이 낫잖아"

가까운 사람이 결혼을 한다. 그런데 어떤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결혼을 결정하고 준비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어서 걱정이 됐다. 그런 생각들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지를 모르겠어서 또 다른 가까운 지인과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그가 내게 했던 한 마디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내게 "이혼보단 파혼이 낫잖아"라고 하더라. 본인이 이혼을 경험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혼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사람들은 '통계로는 이혼을 많이 한다는데 주위에서는 그렇게 이혼한 사람이 많지 않더라'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혼한 사람들은 이혼한 즉시 이혼했다는 사실을 주위에 굳이 적극적으로는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 지인은 이혼한 지 2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굳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더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연애를 할 때 마다 직장동료나 엄청나게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 하나 다 알리나? 아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연애를 시작할 때는 누군가와 우연히 마주치거나 내게 '연애중이야?'라고 묻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몰랐다가 이별하고 나면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내가 연애했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힘들어서 그들을 찾기 때문에 그랬다.


그나마 연애중이냐는 질문은 사람들이 싱글에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결혼생활 잘하고 있어?'라는 질문을 우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혼했니?'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데 이혼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거나 상대와 그렇게까지 가깝지 않다면 그렇게 직접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그저 적절히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결혼까지 갈 필요도 없다. 연애할 때도 굳이 연인과 다퉜다는 건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는 굳이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지 않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사실은 나 이혼했어'라고 먼저 말하는 게 어색해질 수 있다. 또 사람들이 굳이 남의 결혼생활에 대한 질문을 그렇게 자주하는 것도 아니니 이혼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타이밍은 시간이 지날수록 애매해진다. 내 지인들 중 이혼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런 방식으로 이별을 택했다. 내 주위에서는 이혼한 사람이 적지는 않은데, 내가 그들이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된건 어느 정도 이상의 친밀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는 이혼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적지 않게 들어봤고, 이혼하는 사람들을 머리로나마 이해하기도 한다. 내 주위에서 갈라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더라. 그리고 그들은 모두 힘든 시간을 혼자 감당해 내는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다 알겠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적어도 수배, 대부분 수십에서 수백배는 더 힘든 과정을 겪을 것이다. 한 지인은 이혼하게 되는 과정에서부터 마친 뒤까지 약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내린 결정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기에 난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항상 마음으로나마 응원했고, 지금도 응원한다.


거기까진 경험하지 않았어도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사실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애초에 어떻게 헤어지게 될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결혼 전에는 보거나 알지 못했던 부분이 나타나서 이혼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이해가 됐지만, 적지 않은 이혼 사례들을 보면 결혼 전에는 별 것 아닐거라고 생각하는 문제가 결혼한 뒤에는 감당하지 못할 요소로 바뀌게 되더라.


후자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가까운 사람이 결혼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면밀하게 보다보니 그게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 다른 나라들은 정확히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식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결혼식과 집을 구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미션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게임하듯이, 목표를 달성해 내듯이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다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 준비하는 과정이어서 서로 예민해서 그런걸꺼야. 결혼하고 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거나 이미 결혼한다고 주위에 많이 알렸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물음표가 생겨도 마음 먹은 결혼을 그대로 추진한다. 대학입시나 취업이, 사업이 과정은 힘들어도 이루고 나면 다 좋아질거라고 믿으며 현재를 견뎌내듯이 말이다.


그런 모습들을 처음으로 면밀히 보게 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적지 않은 경우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두 사람은 결혼준비에 들어간 뒤에는 그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듯하더라. 자신이 마음 먹은 이상, 자신이 확신을 가진 이상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은 잘 들리지 않게 되기도 한단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너무 소중하고 내가 너무 아끼는 사람이다 보니 어떤 말을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하던 와중에 '그냥 입 다물고 있는게 좋겠지. 우리 관계라도 유지하려면?'이라고 하자 이혼한 친구가 한 답이 '나는 너가 얘기해주면 좋겠어. 그래도 이혼보단 파혼이 낫잖아'였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고, 전화를 끊은 후에도 뭔지 모를 이상한 감정이 가슴 깊게 박혔다. 하지만 난 결국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젠 나의 생각과 우려가 기우였고, 틀렸기를 바라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오래 전에 했던 그 한 마디가 뇌리에 맴도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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