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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TC

김현수를 떠나 보내며

by Simon de Cyrene

LG트윈스 팬이다. 아버지께서 해태를 다니셨고, 해태가 최강으로 군림하던 시절, 내 고향이 서울이니 서울팀을 응원하겠다며 집에서 혼자 LG트윈스 팬이 되었다. 사실은 당시 MBC청룡을 갓 인수한 LG트윈스의 쌍둥이 마스코트가 마음에 들었다. 엘린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인 90년부터 그렇게 엘린이가 됐고, 초등학교 시절 내내 어린이회원에 가입했다. 하필(?) 그해 LG트윈스가 우승을 하면서 30년 넘게 LG트윈스에 묶여 있다.


LG가 아닌 다른 야구단을 소유한 회사에 다녔고, 야구를 좋아한단 이유로 야구단이 나갈 방향을 논의하는 TF에 들어가고, 야구단 사장님과 스카이박스에서 야구를 보면서도 LG를 버리지 못했다. 팀장님께서 사장님께 '얘 LG팬이래요'라고 이르듯이 말씀하시자 사장님께서 ' LG팬도 있어야 리그가 운영되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암흑기에도 LG를 버리지 못했다. 2년 전 정규시즌 우승 세리머니 현장에서 눈물을 흘렸고,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코시 우승을 용산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벤치에 앉아 9회에 앉아서 봤다. 도저히 이동하면서 보지는 못하겠더라.


그 사이 많은 선수들을 떠나보냈다. 가장 충격적이고 분노를 했던 건 김동수의 이적이었고, 그 뒤에도 김재현도 강제로 밀려나고, 이상훈이 떠나보내졌다 LG를 향해 야구공을 던지지 못하겠다며 은퇴하는 것을 봤으며, 채은성이 한화로 가는 것도 봤다. 이번엔 김현수다. 사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충격이 크진 않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며 예상과 각오도 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이 더 크고, 우리에게 준 게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은퇴했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혹자는 15억 이상 차이가 났다면, 프로라면 떠나는 게 맞다고 한다. 맞다. 프로는 돈을 보고 움직인다. 이상훈이 LG를 향해 던지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박용택이 30억을 포기하며 LG에 남고, 임찬규가 다른 구단들과 협상하지 말라고 에이전트에게 말한 것은 물론이고 박해민이 10억을 더 적게 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이 예외적이고 낭만적인 사례들이다. 프로는 돈을 보고 움직이는 게 맞다.


그런데, 정말 지금 15억을 더 받고 이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줄까? 이상훈은 LG에서 7년밖에 뛰지 않았고, 영구결번이 되지 못했지만 그의 번호는 여전히 LG에서 함부로 달면 안 되는 번호로 남아있다. 그가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설을 할 수 있고, 그의 공연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그가 LG의 레전드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용택 선수도 은퇴 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중에 한 가지는 결국 LG팬들이 그를 여전히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임찬규도, 박해민도 은퇴한 뒤에 LG팬들은 그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응원할 것이다. 그런 지지는 결코 작은 요소가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코치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으면서 방송을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인데, 한 팀의 레전드로 남은 사람들은 그 지지가 더 강하고, 그러면 몸값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팬들의 지지가 강하면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


만약 김현수가 LG에 남았더라면, 그리고 3년의 계약 기간 중에 우승을 1-2회 정도 더했다면 LG팬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에게 고마운 마음만 갖고 그를 확고한 팀의 레전드로 여겼을 것이다. 그가 우리 팀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줬는지를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그가 은퇴 후에 무엇을 하든지 LG팬을 끌어들이며 그의 몸값을 올려줬을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작년부터 그에 대해 영구결번 얘기가 나올 때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남아서 1-2회 우승을 더 이끌었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는 항상 LG에서 VIP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LG는 영구결번 출신들에게는 팀 소속이 아니어도 우승반지를 주고, LG출신들을 코치로 많이 불러들일 정도로 LG출신들을 챙기는 팀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장기적으로는 그에게 더 큰 자산이 되었을 수 있다. 박해민이 10억을 정말 순수하게 포기만 하면서 LG에 남았을까? 순수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향후 4년 안에 우승할만한 전력을 갖춘 팀, 그리고 이 흐름 안에서 LG안에서 은퇴할 경우 갖게 될 수 있는 자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진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현수는 떠나고, 그는 남으면서 두 사람이 대비되며 그는 그런 자산을 갖게 될 확률이 더더욱 높아졌다.


김현수가 작년과 재작년에 WAR이 1을 가까스로 넘었고, 소녀감성인 빅보이 이재원 선수는 경쟁과 압박이 없을 때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냉정하게, 머리로만 생각하면 김현수가 떠난 게 우리 팀을 위해선 더 좋은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난 것이 아쉬운 건, 그가 남았다면 그와 우리 구단이 가질 수 있었던 장기적인 자산이 15억 이상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LG팬이라면 모두 김현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떠남으로 인해 고마운 마음에 더해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마음을 갖는 팬들도 생겼다. KBO 안에서 유별난 팬을 가진 팀 중에 하나인 LG이기에, 그가 LG의 레전드로 남았다면 LG를 암흑기에서 구해준 그에 대한 지지는 은퇴 후에도 이어졌을 텐데 이젠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힘들어졌다.


그가 두산에 있을 때, 지인의 지인으로 술자리에서 딱 한 번 만났던 그가 LG에 왔을 때 기뻤던 것만큼이나 그를 떠나보낸 아쉬움이 크다. 이젠 그가 떠난 것이 내년, 그리고 그 이후에 FA가 되는 선수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잡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랄 뿐이다.


아디오스. 김현수 선수.

고마웠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우승은 우리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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