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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화 Mar 24. 2017

육아를 하며 다시 꿈을 꾸다

 우리는 그야말로 결혼생활에 답이 없었다


나는 YMCA에 상근 하면서 남편을 만났다. 내가 살던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 우리 둘은 너무 사랑해서 단칸방이 좁은 줄도 몰랐다.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하고, 또 무시했던 우리는 결혼 준비 당시 ‘상대방에  무얼 더 받을까?’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는 게 아닌가?’로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고 나서야, 즐겁게 일했던  시민단체의 박봉으로는 평범한 삶을 꾸려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최악의 커플 유형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시민단체 상근자와 시민단체 상근자가 커플, 두 번째는 시민단체 상근자와 사회복지사 커플, 세 번째는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사 커플이었다. 


첫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결혼생활에 답이 없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기 2-3일 전 나는 업무복귀를 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이 아이를 아동시설에 맡겨야 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울었다. 복귀 전날 간신히 아이를 돌봐줄 분을 찾아, 일을 시작했는데, 내가 받는 월급은 고스란히 육아비로 지출되었다. 시어머니가 결혼 때 해주신 예물을 팔고, 보험을 해약하면서 생계를 꾸리다 보니, 노후를 포함한 미래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미래 없이 사는 삶이 두려웠고, 아이가 원하는 교육 뒷바라지와 부모님을 부양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나는 좀 더 강해지고, 또 돈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커리어를 위해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두고 일반대학원 경영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학부 전공이 경영이 아니라 법학이었던 나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자 스스로에 대해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자괴감에 빠졌다. 근무를 하고 돌아와 아이를 돌보다가 잠재운 후 새벽에 공부를 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때 진짜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지 않았나 싶다. 눈가가 찐득찐득해져서 윗줄과 아랫줄이 구별이 안되도록 경영학 원서를 읽어대며 잠을 미루는 날이 계속되었다. 아이가 자주 아프고 열이 나서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결혼이나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부모님이 대주는 공부만 하는 풀타임 대학원생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옛 말이 절로 공감이 갔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학비를 쪼개서 내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도 YMCA의 시간적 배려와 누리 문화재단의 NGO장학생이 되어 4학기 만에 석사를 받았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고마운 분들이 참 많다. 그때 상황에서 나는 거의 학위를 욕심내지 못했는데, 지도교수님의 격려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함께 새벽까지 연구해주신 이희정 박사, 양동민 박사, 그리고 설문을 도와주셨던 무진기연 조성은 대표님 등, 나도 내가 받은 것을 그분들과 또 다른 분들에게 더 크게 갚고 싶다.  

그렇게 석사를 하고, YMCA 내부에 문제도 있고, 경력 변화도 필요해서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기업에의 속도와 변화에 대해 체감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 마침 금호아시아나 그룹에서 문화시설을 새로 오픈하면서 경력직을 채용하고 있었다. 나는 드물게 35세라는 나이에  대기업 문턱을 넘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급여는 배로 올랐다. 또 남편도 법인을 만들고 시설을 운영하면서, 경제적 형편도 풀렸다. 그러나 풀린 형편만큼 내 맘도 풀리고, 행복감도 늘어났던 것은 아니다. 


당신의 비즈니스와 커리어를 빛나게! 아이디어캐빈 대표 김세화 

경영학 박사 수료 / 전) 금호홀딩스 자산개발 과장 / 고용노동부 청년 취업 아카데미 전문 강사, 멘토

070-4267-9933

1675mil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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