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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Jan 04. 2020

방콕에서의 날들

나에겐 행복과 행운의 도시

나에게 여행이란 ‘돌아오기를 약속한 탈출’이다. 현실에서 ‘직장인으로서의 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같은 역할 수행을 떠나 그냥 나대로 있어도 아무 상관 없는 시간들. 그 탈출의 시간동안 나는 현실의 나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속에 있는 나를 어떻게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을까 생각한다.


몇번 가본 곳을 또 가게 되면, 식당 주인이나 라이브 펍의 밴드 멤버 등 만났던 사람(그 사람들은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을 또 만나게 된다. 나도 그랬고, 그 사람들도 지난 1년 동안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 사람들에게도 지난 1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잘 버티고 살아왔음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인연의 신비에 감동했다. 밤에 혼자 갔던 Adhere the 13th Blues bar에서는 정말 우연히 R을 만났다. 처음 만난 사람이고 큰 음악소리로 가득찬 곳에서 몇 마디 주고 받지 못했는데도 나는 알았다.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하는 구나. 대화가 재미있구나. 내가 이해받고 있구나. 내가 이해할 수 있구나. 광막한 우주와 억겁의 시간에 그 때 그 장소에서 R을 만난건 행운이다.


어느날 오전 호텔 수영장에서는 작년에 8개월 동안 독서모임을 같이 했던 멤버 K를 아주 우연히 만났다. 이역만리 타국의 호텔 수영장 입구에서 아는 얼굴이 등장하는데, 눈을 의심한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상황이었다. K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러개의 우연히 겹쳐서 거기서 만날 수 있었고, 그 중에 하나만 삐끗해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K와 몇개의 일정을 같이 했다. 고독했을 수도 있는 시간에 K와 함께 해서 즐거웠다. 올해 2월에 K의 회사는 사무실을 이사한다고 했다. 들어보니 지금 내가 있는 공유오피스 지점이었다. 인연은 신비롭다.


올해 연말에도 또 방콕에 가고 싶다. 매년 연말을 그 곳에서 보낸다면 나중에 나이가 먹어 여행을 갈 수 조차 없는 몸이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다른건 몰라도 매년 연말에 추위를 피해 방콕에서 보낸건 참 잘한 일 이었어. 방콕에 있었던 날들은 매일이 좋았지. 내겐 행복과 행운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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