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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정 Mar 29. 2021

산책할 때는 무기를 들고 나가라

60대가 되면서 고혈압과 당뇨가 생겼다.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결과겠지…. 당연히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처방이 떨어졌다. 운동이라고 해 봐야 산책이지만 한 시간은 걸어야 효과가 있다고 해서 동네에 있는 대학교 교정을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생만 보이고 동네 주민은 별로 없었는데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인구가 늘어나니 반려견도 따라서 다니기 시작했다.

여기가 학교인가? 유원지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과 반려견이 떼를 지어 학교로 들어온다. 질서도 무너지고 몰상식한 행동을 서슴없이 해댄다.

개의 습성이 무엇인가? 가는 곳마다 영역 표시를 한다. 똥은 치우는데 오줌은 어쩔 수가 없는지 지린내가 나기 시작하더니 학교가 동물의 왕국, 무법천지가 되어 버렸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개들이 좁은 집에서 지내다 넓은 곳으로 오니까 해방감인지, 사교 활동을 하자는 것인지 사람 다리에 들러붙고 덤벼든다.

산책 나갔다 와서 옷을 세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대학교 교정 산책을 포기하고 인도로 나섰다. 그런데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이 동네는 그 흔한 공원 산책로도 없고, 주택가는 차들이 무단주차를 하는데 길 양쪽에 차가 꽉 차 있어서 사람은 날개가 달려서 날아다녀야 한다. 말하자면 사람보다 차가 대접받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다니냐? 주차된 차 옆으로 바짝 붙어서 다닌다. 서로가 길 한가운데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차를 위해서 비워 둔다.

그러다 보니 차 옆에 붙어 다니는 사람끼리도 경쟁이다. ‘자동차님’ 편히 다니시라고 길 한복판이 비어 있는데도 어떻게든지 차 옆에 붙어서 지나가려고 은근히 신경전이다.

아니! 적대감이다. 차도 옆 인도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미 그런 현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는 차가 안 다니는데도 서로 구석으로 다니려고 거기서도 신경전이다. 비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을과 을이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다. 사람이 많으니까 이미 마음속에는 화가 나 있어서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다가와서 부딪히고 간다. 산책을 하러 나가는 게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으러 나간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양산을 하나 사서 매일 들고 다니며 ‘방어선’을 치고 산책하러 다니게 되었는데 효과가 괜찮다. 일단 양산을 사람이 다가올 만한 방향으로 쓱 들이밀면 살짝 비껴간다.

특히 신호등에서 효과가 좋다. 내 또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신호등이 꺼져 갈 때쯤이면 다음에 건너도 될 것을 하나같이 기를 쓰고 건너려고 그때부터 뛴다. 그럴 때는 사람이고 뭐고 안 보이나 보다. 내가 다 건너서 인도로 올라가려고 하면 툭 치고 지나간다. 그럴 때 양산을 휘두르면 나를 피해 간다.

썩 괜찮은 방법 같다. 스트레스가 안 쌓인다.

그런데 양산도 길거리 흡연자에게는 속수무책이다. 담배만 피우면 그래도 어찌어찌 참아 보겠는데 침까지 탁 뱉는다. 사람이 넘치니까 서로서로 화가 넘쳐서 화풀이를 서로에게 하는 형국이다.

어찌 되었든 다른 대안이 없다.

난 오늘도 양산을 무기 삼아 산책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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