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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정 Mar 31. 2021

용역 업체 사장은 그런 거 따지는 거 싫어해

60대 청소 아줌마 이야기

내 나이는 올해 65세이다. 남들은 심심해서 청소일 나섰다고 하는데 나는 생계를 이어 보려고 경험도 없이 청소일에 뛰어들었다. 고혈압, 당뇨가 있으니 많이 걸어 다니는 장점도 있고 해서 병원 청소를 시작하였다. 전임자한테 한나절 인수인계를 받고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그럭저럭 못할 것도 없다 싶었지만 화장실 청소는 정말 싫다. 나중에는 내 몸에서 화장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맡은 구역은 수술실도 있어서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피도 봐야 하고, 수술 중 적출한 신체 부위와 암덩어리도 가끔 보인다.

돈 벌기가 쉬운가 싶어서 견뎌냈다. 시간이 흐르니 요령이 생겨서 차츰 적응이 됐다. 문제는 동료들과의 알력 다툼이었다. 피곤하다. 맡은 구역이 다 따로 있는데 자기 구역을 나한테 조금 떠넘기는 게 정말 화난다. 텃세 부리는 거다. 새벽부터 나와서 똑같이 일하는데.

내 구역이 다른 데에 비해 조금 헐렁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남의 구역을 떠안는 것은 억울해서 소장한테 하소연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아서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막상 관두니 생계가 참 막막했다.




바로 대학교 미화부에 취직을 했다. 미화부는 지하 주차장의 한 공간을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는데 첫 출근 날에 약 20명가량의 아줌마들이 한 방에서 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기는 또 얼마나 알력이 대단할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자기 구역을 떠민다. 신입은 먹거리를 한턱내야 하는데 그걸 건너뛴 영향도 있을 듯하다.

여기는 청소 도구나 비품 지급에 특히 인색한데 그 이유는 아줌마들이 그걸 집에 가져간다는 거다. 휴지도 휴지심을 갖고 가서 소장에게 보여주고 개수만큼 탄다. 대걸레, 빗자루는 하도 주질 않아서 본인이 사서 쓰는 사람도 있다. 내가 쓰던 대걸레도 전임자가 사놓고 쓰다가 그만둔 거라고 얘기해주는데 이걸 그대로 참고 입을 다물어, 말어?

소장은 남자인데 아줌마들이 청소하러 나가면 자기 방에서 술을 마신다. 언제 한 번 물어볼 게 있어서 소장 방에 노크를 했더니 방 안에서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딱 낮술 먹고 자다가 나온 모양새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아줌마가 ‘왜 아침부터 술 생각이 나지?’ 하니까 소장이 ‘내 방에 가서 소주하고 맥주 몇 병 들고와’ 하는 거다. 그러더니 정말 가져와서 소장이 몇몇 아줌마들과 술을 마셨다. 많이 해 본 솜씨 같다. 정나미가 똑 떨어져서 그만두었다.




그다음은 아파트 청소였다.

새벽에 출근 안 해도 되고, 집도 가깝고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어 시작했는데 여기도 처음에만 쉬웠다.

아파트 현관, 우편함, 유리창에다 엘리베이터를 닦고 15층부터 복도와 계단을 빗자루로 쓸면서 1층까지 걸어서 내려온다. 두 개 동을 맡았는데 그냥저냥 할 만하긴 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두 동 중 한 동은 아파트 현관까지 가려면 계단이 50개가 있는데 이 계단을 가끔씩 막대솔로 비누칠하고 호스로 물을 뿜으며 닦으라 했다. 신주(놋쇠의 일본 표현. 구리에 아연을 섞은 합금.)라고 계단에 미끄럼 방지용 논슬립을 박아 둔 걸 약품을 사용해 막대솔로 문질러서 광을 내야 한다.

광을 낼 때에는 세 가지 걸레질을 한다. 처음에는 물기 있는 것, 두 번째는 마른 것, 세 번째는 깨끗한 것으로 닦는데 광이 잘 나려면 세 번째 깨끗한 걸레로 박박 문질러야 한다. 그러고 나면 연두색 비슷하게 더러운 신주에서 금빛이 난다. 그 짓을 15층부터 내려오면서 한다고 계산해 보자. 50개나 되는 계단을 광내야 한다.

또 일 년에 두 번, 아파트 대청소를 하는데 물청소다. 돌 연마 기계로 복도 바닥 때를 벗기는 일이다. 이 일은 사람을 많이 동원해서 한다. 일단 용역 업체에서 사장이나 부장, 과장 중에 한 사람이 온다. 그 사람이 기계로 복도 때를 벗기면 아줌마들이 그 뒤를 따라다니며 호스로 물을 뿜고 대형 밀대걸레로 물을 모는 작업이다.

왜 이런 작업을 하느냐? 일명 ‘도끼다시(테라조의 일본 표현. 잘게 부순 대리석을 시멘트나 콘크리트에 섞어 만드는 건축 자재. 예전에는 학교 바닥재로 많이 쓰였어요.)’라고 시멘트에 돌조각을 배합해서 바닥 마감재로 바르는 것인데 70년대에 많이 쓰인 시공 방식이다. 견고해서 오래가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정기적으로 겉면을 갈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파트 11개 동을 물청소하려면 3~4일이 걸린다.

이렇게 하는데 월급은 얼마냐? 120만 원 남짓한 돈이다. 물론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고, 일요일은 쉬고 빨간 날도 쉰다. 근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다.

여기서 잠깐, 귀찮은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점심 식사 문제이다. 점심을 제공한다고 들었는데 일단 용역 업체에서는 쌀 한 포대만 사준다. 한마디로 밥을 알아서 해 먹으라는 이야기다. 밥하는 도구는 전부 남이 실컷 쓰던 것을 주워온 것이다. 전기밥솥은 코팅이 다 벗겨지고, 식기도 누가 내다 버린 걸 주워와 쓴다. 반장이 밥과 국을 끓이고, 반찬은 각자 집에서 2~3일 치를 가져와 나눠 먹는다. 떨어지면 또 싸오고.

그러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지냐? 각자의 음식 솜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반장은 반찬을 싸오지 않는다. 음식 솜씨 자랑대회에서 저만 쏙 빠지는 거다. 다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음식 솜씨 자랑대회 참가자가 되어 심사대에 오르는데 맛없는 반찬은 그릇만 바꿔가며 식사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내가 일을 그만둘 때쯤에는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냉장고를 어디서 주워 올지 반장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2조로 나누어 번갈아 하는데 이게 또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주방이 아니라서 빨간 고무통에 물을 받은 다음 쭈그려 앉아서 설거지를 하는데 반장과 아파트 외곽을 청소하는 남자는 여기서 또 쏙 빠진다.

이 남자가 또 웃기는 게 용역 업체 사장네와 이웃사촌이라 첩자 노릇을 한다. 전임자는 자기 점심을 스스로 해결했다고 하던데 이 남자는 굳이 아줌마들 쉬는 방으로 점심밥을 먹으러 온다. 미화원 휴식 공간 제공이 요즘에는 법으로 정해져서 그 남자도 아늑한 쉴 공간이 있는데 말이다. 수다 떠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줌마들이 출근하면 옷 갈아입는 방에 와서 아줌마들이 타주는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수다를 떤다. 그래서 아줌마들은 남자가 나타나기 전 부랴부랴 서둘러서 옷을 갈아입어야만 한다. 아마도 저 인간은 수다를 떨고 싶어서 일하러 나오는 걸 거다.

얘기가 잠깐 엇나갔는데 점심식사 얘기로 돌아가자.

점심 제공이 이런 식으로 점심값을 후려치는 행태라면 차라리 도시락을 각자가 집에서 싸오고 점심값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반장한테 건의를 했더니 뭐라는 줄 아는가?


“사장이 그런 거 따지는 거 싫어해서 안 됩니더.”


제대로 따져 보자면 청소 용품 배급도 이상하다. 그중에 물비누를 끔찍이도 아낀다. 다른 비품은 집에 가져갈 일이 없는데 비누는 집에 가져간다나?

참! 내친김에 하나 더 말하자면 일부 아파트 주민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다. 아줌마들이 청소를 해 놓고 가면 계단에 담배꽁초도 버리고, 침도 뱉어 모아 놓고, 똥도 싸 놓고 오줌도 싼다. 어렵게 닦아 놓은 신주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으니 어제만 해도 금빛이 나던 신주가 다음날에 가 보면 시커멓게 변색이 되어 있어 속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층에 사는 주민은 가끔 쓰레기도 위에서 투척한다. 화단에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려면 시간이 만만찮게 걸려서 다른 일은 미루고 거기 매달려야 한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지만 60대 청소 아줌마가 겪는 현실이란 정말 어마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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