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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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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씨 Oct 01. 2024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할까

그의 사정



나는 가끔 혼자서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밀린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의도치 않게 시선이 끌리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믿기지 않지만 현실에서 펼쳐진 그 대화들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 그의 사정


늦은 오전.

작업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두 잔인데 앞자리는 비워져 있었고 곧 누군가 오는 듯 문 쪽을 바라보는 남자.

잠시 후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호리호리한 체형의 한 남자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쪽으로 계속 시선이 갔던 건 과도하게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덩치 큰 그 남자 때문이었다.

그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푹 떨구다가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맞은편 남자에게 호소하는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대체 무슨 얘길 하길래 저렇게 어렵게 말을 꺼내는 걸까,

그 남자의 대각선 위치에 앉아있었던 나는 귀를 쫑긋 열고 대화 주파수에 집중했다.


“저도 일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괴롭히니까 견딜 수가 없습니다. ”


맞은편 양복남은 두 팔을 꼬고 몸을 뒤로 쭉 뺀 상태에서 곤란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저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청업체라고 저희가 자를 수는 없어요.”


대화의 요지는 저렇게 덩치 큰 남자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것.


아마도 작업복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것은 오전동안 일을 하다가 결국 견딜 수 없어 현장을 박차고 나오게 됐고

그 길로 양복남에게 전활 걸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이기에 저렇게 절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남자는 절망한 표정으로 커다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양복남이 자리를 비우고도 한참을 자리에 멍하게 앉아있던 남자는

어느새 고갤 들어보니 사라져 있었다.


살다 보면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벼랑 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벼랑 아래에 계단도 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방법도 있음을 깨닫지만

그건 시간이 흘렀기에 보이는 것들이다.

그래서 힘든 사람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고통을 버티고 참으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가끔씩 그 카페를 지나게 되면 흐릿한 얼굴의 그 남자가 떠오른다.

부디 잘 이겨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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