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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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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씨 Oct 07. 2024

"할머니 내가 준 편지 어디 있어?"

다 어디 갔을까 

        

저번주 퐁당퐁당 징검다리 휴일에 휴가를 쓰고 머나먼 나의 친정집에 다녀오게 됐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딸이 야심 차게 준비한 선물 꺼냈는데 그건 바로 유치원에서 색종이에 곱게 쓴 편지였다.     


할머니 사랑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눌러쓴 '사랑해요'.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애정이 담긴 말일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따로따로 쓴 편지는 반으로 접어 하트를 그려 넣었다. 

할머니 편지에는 예쁜 공주가 윙크하는 모습을 그려 넣은 정성이 담뿍 담긴 편지였다.

엄마 아빠는 늘 그렇듯 최대치의 리액션과 칭찬과 표정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데 다음날 

나들이를 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딸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 할머니 내가 준 편지는 어디 있어? ”

“ 으응 잘 놔뒀지”     


순간 엄마의 뜨끔한 표정을 보니 그 편지의 행방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나 역시 엄마아빠에게 생일이나 어버이날에 편지를 종종 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쓴 편지가 엄마 아빠가 휘갈긴 메모장이 되어 서랍이나 방바닥에 굴러다니는걸 여러 번 목격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엔 엄마아빠에게 편지를 안 쓰게 됐다.  


편지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종잇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비참함.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닿는 소통 창구가 하나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상자에 소중히 보관해 달라는 부탁까진 아니어도 딸의 눈에 쓰레기조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삼켰다.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또 한 번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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