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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yeon Aug 29. 2018

딱 하루로 즐긴 제주 이야기

당일치기로 다녀와 봤다


놀면 참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쉴 때만큼 바쁜 시기가 있을까. 해야할 일, 사람 약속, 각종 예약이 뒤섞이다 보면 온전히 놀 시간을 찾기가 어렵다. 그중에서도 다 같이 여행갈 날짜를 맞추기란…!


그래서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제주도를. 옆 나라도 1박, 아니 당일로 가는 요즘인데 제주도쯤이야. 새벽 6시 10분 비행기로 출발했고 밤 9시 15분 비행기로 돌아왔다. 겨우 두세시간만 자고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그러면서도 또 배고프면 안된다고 집과 공항에서 간식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꽉꽉 채웠던 하루 이야기.

이번 여행 일정은 언니가 맡았다. 일정이라고 할 건 딱히 없었다. 컨셉이 먹방이었고, 맛집 리스트만 제주도에서 오래 지낸 친구한테서 한가득 얻어왔으니까. 예전에 갔던 관광지를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어디 가야하지 않나 고민할 일도 없었다.


일단 렌터카는 제주예스/에코렌트카’. 얼마나 저렴했던 건진 모르겠지만 후회했다. 이 회사는 셔틀 운행 시간이 오전 8시부터다. 즉 7시에 도착하든 7시 30분에 도착하든 8시까지는 공항에서 셔틀을 기다리며 내내 죽치고 있어야 한다. 제주예스/에코렌트카 예약자들이 멍하니 서서 기다리는 동안 옆에 롯데렌터카 셔틀은 줄곧 왔다갔다했다. 3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면서 ‘이래서 대기업(?)을 선택하는구나’라고 몸소 느꼈다. 그래도 인수는 빨랐다.


차를 픽업한 뒤 원래 계획은 다가미김밥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애매했다. 집에서 먹은 빵, 공항에서 먹은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탓에 당장 간식을 먹을 만큼 배고프지 않았다. 차라리 조금 참았다가 제대로 된 아침을 먹자. 그래서 바로 명진전복으로 향했다.

명진전복은 가게 오픈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대기가 있었다. 미리 주문하고 9번으로 들어가 앉았는데, 한 5분쯤 지나자 빈 자리가 아예 없었다. 평일(목요일)인데도 정말 손님이 많다. 주문한 음식은 돌솥밥 2개, 전복구이, 그리고 전복죽. 생선이 기본 반찬으로 나와서 상이 푸짐했다.


돌솥밥이 제일 맛있었다. 심심한듯 하면서도 고소하고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전복구이는 뭔가 건강한 버터 맛이 났다. 쫀득쫀득하기도 하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또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나머지 음식에 비해 전복죽은 평범했지만, 양이 많고 전복이 꽤 실하게 들어있었다.

이어 김녕미로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미로공원의 미로보다는 이곳에 산다는 고양이에 더 관심이 많았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었다. 자꾸 앞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을 귀찮아한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 듯. 미로공원에서는 한 무리의 중·고등학생을 만나 암담했지만 다행히 다들 흩어지니 소란스러움이 생각보단 무난했다.

미로 탈출 기념으로 엽서 선물을 받은 뒤 구슬아이스크림으로 뒤늦은 후식을 먹었다. 아직 점심을 먹으러 가기엔 배가 부르고, 움직이기엔 피곤했다. 그래도 왔으니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지. 이왕이면 시원한 곳으로 가자며 인근 동굴로 향했다.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새벽 6시 비행기는 생각보다 더욱 피곤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선 그대로 한 시간 가까이 잠들었던 것 같다. 저질 체력인 나는, 이후로도 이동하는 내내 잠만 잤다. 아무도 내겐 운전을 맡기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졸업 뒤 연락 한 번 안하던 언니 친구가 예전에 제주도에 간 언니한테 카톡을 보내 “꼭 꼭 가라”고 추천했던 음식점이 있다. 조천읍에 있는 오름나그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여는 도도하고 사장님이 무척 부러운 식당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언제나 푸짐하게 시키는 우리는 여기서 또 해물 파전, 보말칼국수, 버섯들깨칼국수를 주문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보말칼국수인데 개인적으로는 해물 파전이 가장 맛있었다. 원래 파전을 안좋아하는 데도 불구하고. 바삭하게 튀겨내듯 구운 것이 내 취향이었다. 얇은 부분은 과자를 먹는 기분도 들었다. 보말칼국수는 다른 음식보다 끓이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보말과 버섯들깨 칼국수 중에선 버섯들깨가 더 입맛에 맞았다.

배를 채운 뒤 처음으로 렛츠런팜을 가봤다. 가자마자 만족했다. 들어가는 길에 바로 보이는 꽃밭도 (멀리서 보기엔) 예뻤고, 말도 귀엽다. 파워볼이 아니고서는 평생 벌어도 못 낼 몸값을 자랑하는 말들이다. 렛츠런팜은 시간 별로 트랙터를 태워 도는 투어가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다음 투어가 만차인 상황. 한 시간 뒤에 투어를 예약하고 기다리는데, 부실한 자전거도 있고 동물도 있고 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투어 마지막 즈음엔 럭키드로우를 통해 귀여운 손수건도 선물로 받았다.

사실 내가 제주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카페 투어였다. 예전에 한 번 카페만 가서 푹 쉬겠다며 제주에 온 적이 있다. 여러 상황 탓에 하진 못했지만. 이번엔 오롯이 카페를 위해 서귀포를 찾았다. 인근에 주차를 하고 찾아간 이정의댁은 생각보다 내부가 작았다. 인스타 사진을 위한 카페라는 느낌이 강했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창문이 프레임처럼 보여 딱 봐도 인생샷 나올 것 같은 포토스팟이 있었고 내부도 잘 꾸며뒀다. 사람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은 뒤 자리를 떴으며,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디저트도 맛있다. 오후에 갔는데 이미 품절인 디저트도 몇 개 있었다.

아침부터 챙겨먹고 커피에 디저트까지 먹으니 정말 배가 안고팠다. 하지만 그래도 왔으니 고기는 먹고 가야한다는 의지 하나로 돈사돈으로 향했다. 제주 고기집을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구워주니까 너무 편하다. 고기를 자르면서 부위별로 어떻게 먹으라고 알려주는 등 무척 친절했다. 흑돼지 근고기에 김치찌개까지 먹으니 숨쉴 수 없을 만큼 배불렀다. 더불어 식사를 끝낸 뒤 무심코 찾아본 사진 속 흑돼지들이 너무 귀여워서 마음이 안좋았다.

카페를 두 군데 가려고 했다. 바닷가 야경이 예쁘게 보이는 곳 혹은 물고기카페. 하지만 밤 9시 비행기 시간이 애매했다. 저녁먹고 야경까지 즐기려면 비행기 시간을 조금 더 뒤로 잡아야 한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카페를 들를까도 했지만 끊임없이 먹은 탓에 몸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졌다. 그 힘든 몸 상태 와중에도 해지는 풍경이 참 예뻤다. 어딜 들어가진 않았지만 차에서 내려 잠깐 걸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조금 연착됐다. 제주도에서 이동하는 도중에 많이 잔 덕분에 정작 올 때는 전혀 졸립지 않았다. 반면 계속 운전했던 이들은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언니는 새벽 3시 30분부터 깨있어서 하루가 길었던 게, 마치 내일의 시간을 빌려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동감공감. 중간에 많이 잤다고 자부한 나조차도 다음 날 오후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당일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짐이 간편했다는 거다. 부칠 필요도 없고, 하루 외출하는 간단한 소지품이면 충분했다. 공항에 내려서도 짐을 찾는 번거로움이 없었다. 다만 이제 먹방 여행은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위에서 받지도 못하고 몸이 너무너무 힘들다. 뭐든지 적당한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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