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고 보니 12월 중순이다. 캐럴을 들으며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지나갔지만 여전히 무거운 11월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줄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12월엔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자주 만나지 못한 사람도 생각나고, 지키지 못한 약속도 생각나고, 가보지 못한 곳들도 생각나고, 지나쳐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과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서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넘쳐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미련과 설렘, 후회와 기대, 아쉬움과 후련함. 이런 상반된 기분이 계속해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외롭지 않다가도 12월에 되면 괜스레 외로워지기도 한다. 분명 11월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12월이 되면 뭔가 문제가 된다. 혼자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12월이 되면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다. 파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많은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보내야 할 것 같은 12월.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카운트다운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12월. 참 이상한 달이다.
어쩌면 미련, 후회, 아쉬움 같은 그런 기분들을 잊기 위해서 우리는 더 시끄럽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인지도 모른다. 12월의 어두운 면을 가리기 위해서 더 반짝이게 만드는 것이다. 왁자지껄한 사람들과 음악 속에서 잠시라도 잊고 싶은 것들을 잊기 위해서.
2022년 중순부터 좋지 않은 일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 있었다. 친했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오해로 어지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 충격은 사실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괴롭긴 하지만, 나는 이것을 무시하기로 결정했고,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한 문구를 보게 되었다.
'Choose your friend like you choose your fruits.'
아주 심플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만 만나면 되고, 같이 만났을 때 행복하고 즐거우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면 되니까. 누가 내 욕을 하고 다녀도 난 상관없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혹은 상대방의 잣대에 맞춰서 하는 이야기들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를 잘 아는 나의 진짜 친구들과 그런 것들을 안주 삼아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어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멋모를 때 어떻게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하나의 인간관계가 10년이 지나 이렇게 악취를 뿜어댈 줄 낸들 알았으랴. 올해가 가기 전에 썩은 과일을 골라낼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준 2022년의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쓸데없이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잊기에 가장 좋은 시기 역시 12월이다. 그 해의 묵은 감정들을 다 털어놓고 간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저기 저 찬란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 이런 나쁜 것들을 가져갈 마음이 없다. 좋은 것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도 2023년으로 가는 열차에는 자리가 없다.
지나간 시간을 걱정으로 보냈다면 남은 시간 동안 12월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받는 시간들을 보내면 좋겠다. 흘러나오는 캐럴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그것 자체가 12월이 주는 선물이다. 1년 12달 중에 가장 화려하고, 반짝 거리는 달.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는 달. 누군가는 나를 생각해 줄 것이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지는 않을지라도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12월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