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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artners 샘파트너스 Nov 06. 2023

상징은 권력이다

도시 브랜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저에게는 도시브랜드에 대한 애증이 있습니다. 제 커리어의 첫 머리에 위치하는 프로젝트가 도시브랜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저에게 ‘브랜딩 비즈니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던 곳에서 첫 과제로 주어졌던 것이 당시 아직 확정되지 않았던 서울시 도시브랜드의 세 가지 안을 놓고 기획자의 관점에서 평가를 하는 것이었으니, 저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도시브랜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관심은 지금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브랜드나 슬로건을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민감한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도시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결과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도시브랜드가 영속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는가? 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도시 브랜드의 집합


여러분은 ‘도시브랜드’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실 무언가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I.SEOUL.U’나, 사는 곳의 도시브랜드 슬로건을 기억해 낸다면 다행이고, ‘I♥︎NY’ 정도를 떠올리신다면 브랜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I amsterdam’이나 ‘cOPENhagen, Open for You’, ‘Porto’, ‘Be Berlin' 등등 현대 도시브랜드의 마스터피스로 여겨지는 상징물들을 기억한다면 혹시 공공브랜드 업계 사람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죠.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길거리 현수막에서 가끔 보이는 구호, 관광지에 놓여진 조형물 등으로 스쳐지나갈 뿐, 도시브랜드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 때문에 특정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심지어 주거공간을 구입하는 사람은 있어도, 브랜드 때문에 도시에 사는 사람은 없고, 브랜드 때문에 도시에 방문하는 사람도 매우 희귀하듯이 말입니다.


이는 ‘도시브랜드’가 태생적으로 일반 브랜드와는 다른 결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 브랜드는, 어떤 제품을 '내 것과 남의 것'으로 구분하기 위한 낙인이자 상표로서, 경쟁 상황에서 다른 제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구별된 이름을 지닌 구별된 공간으로서 이미 그런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견 비슷한 형태로 발전해 나간 도시들조차 지리, 문화, 역사 등의 이유로 모두 다른 모습을 띄고 있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또 언어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것처럼 도시 간의 차이 또한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그렇지 않았다면 향수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도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정도로 상당히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그 자체를 상징하는 상징물의 단서는 그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아테네의 부엉이나 로마의 ’S.P.Q.R’과 같은 초기 상징들이 있었으나, 이는 도시 그 자체보다는 도시에 얽힌 전설이나 도시를 구성하는 구성원, 즉 시민을 집합적으로 상징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어느 도시에 소속되어 있다는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이 아닌 도시의 소속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左) 로마 시민을 지칭하는 상징 'S.P.Q.R' / (中) 파리 시의 문장(Coat of Arms) / (右) 도쿄 도의 상징


'상징'이 곧 '권력'이라는 것은 이 이후에도 도시 상징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됩니다. 중세 시기부터 나타난 도시의 상징물들은 대개 도시를 지배하는 왕과 귀족의 문장(Coat of Arms)인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도시의 특색보다는 권력자와 그들이 가진 힘을 상징화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 기능 또한 도시의 역사나 기원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전쟁터에서의 피아 식별의 기능이 더 컸습니다. 이러한 기능이 권력자 개인에서 그 권력자가 지배하는 지역, 또는 도시와 도시민으로 옮겨지면서 현재의 도시 문장이 된 것이죠. 이러한 문장들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디자인의 복잡성으로 인해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일부 상실했지만, 여전히 도시의 공식 문서나 관공서 등에서 공식적인 권위의 상징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편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도시 차원의 상징이라는 것이 있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개별적인 제후와 가문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서양의 봉건제와는 달리 철저히 천자 또는 왕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특성을 지녔던 봉건제의 특징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즉, 왕(어기나 오얏꽃)이나 황제의 상징(용)이 국가의 상징으로 존재하되, 그 밑의 도시의 상징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죠. 앞서 문장이 도시 그 자체를 상징하기보다는 도시를 지배하는 권력자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정 도시나 가문이 독자적인 상징을 내세우는 일은 곧 반역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전국시대로 쪼개져 가문 중심으로 돌아가던 일본은 서양의 역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 가문의 문장에서 유래된 도시 문장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도시 상징이 사용된 것 또한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일입니다.


뉴욕의 I♥NY 기프트샵


이러한 복잡한 문장(Heraldry)이 간결한 로고와 슬로건 위주의 ‘도시브랜드’로 재편된 것은, 세계화로 인해 도시들 간의 경쟁 아닌 경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동수단이 발전하고 ‘관광’이 도시의 먹거리로 대두된 시대가 되면서, 도시브랜드는 “도시를 구분짓는 것”이 아닌 “관광객들에게 도시를 홍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최초의 현대적인 도시브랜드가 미국에서 최초로 나타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밀턴 글레이저가 처음 ‘I♥︎NY’라는 로고를 휘리릭 만든 것도 관광 진흥을 목적으로 한 슬로건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서였으니까요. 이것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를 주제로 한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좀 더 지나서는 브랜드 자체가 일종의 아이콘으로서 이 상품 저 상품에 부착되며 이른바 ‘팔리는’ 물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후 수없이 많이 만들어진 도시브랜드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공식적인 자리에서 기존 권위의 상징인 '문장'을 대체하고, 도시의 가치를 재정의해 하나의 상징으로 나타내기 위해 현대적 디자인을 동원하는 브랜드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관광 유치를 위해 만들어지는 슬로건 형태의 도시브랜드보다 그 역사가 훨씬 짧습니다.


다음 상징물을 구분해 정의내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런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도시브랜드’라 부르는 것들 안에는 상당히 많은 개념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도시 안에 도시 그 자체를 상징하는 브랜드와 도시의 목표 설정 또는 홍보를 위한 슬로건, 지자체 관광진흥청 등이 만들어낸 브랜드나 슬로건 등이 공존하기도 합니다. 편의상 ‘도시 상징’, ‘도시 슬로건’, ‘관광 브랜드(Destination Brand)’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무 자르듯 완전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특정 정책을 위해 사용되는 브랜드, 시정 슬로건으로서 사용되는 브랜드, 지자체 내 기관이나 공사의 브랜드 등이 한 지자체 안에 뒤섞이면 도대체 무엇이 이 도시의 브랜드인가를 판단하기 매우 어려워집니다. 이는 도시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조직이 개별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필요만을 느낄 뿐, 이를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빈약해 상징을 일관되게 컨트롤할 수 없고, 그런 컨트롤 타워를 해야 할 인력도 지자체 내의 극소수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도시브랜드는 '여론'과 '정치'에 의해 다른 브랜드보다
더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맞는다.

                
(左) I amsterdam 브랜드 조형물 / (右) 철거된 조형물 대신 설치된 'Huh' 임시 조형물


때문에, ‘I♥︎NY’ 정도의, 클래식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영속성 있는 도시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는 소수에게 집중된 결정권을 지닌 제품 개발 과정과 달리, 민주주의를 채택한 도시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는 워낙 다양하고, 도시가 결정한 일에 대한 판단, 심지어는 도시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자가 역동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 단어로 요약하면, ‘여론’과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과 정치로 인해, 도시브랜드는 다른 브랜드보다 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습니다. 2004년 발표 당시 조형물과의 결합과 절묘한 조어 방식으로 호평을 받았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관광 슬로건 ‘I amsterdam’은 ‘너무 개인주의적이다’, ‘상징물로 인해 무분별한 관광객만 양산한다’는 이유로 2018년 원래 있던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자리에서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I amsterdam을 제안한 디자이너에 의해, 유명한 상징물을 찾아간 관광객들이 맞딱드릴 당혹감을 표현한 'Huh?' 라는 의문을 담은 조형물이 대신 설치되었습니다. 플렉서블 아이덴티티의 전형으로 널리 알려진 코펜하겐의 'Open For You' 브랜드는 2009년에 만들어졌다 2013년 언저리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고, 그 자리는 덴마크 하면 누군가 떠올릴 수 있을 인어공주가 대체하고 있습니다. Porto처럼 아예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관광 등 부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슬로건이나 상징물 등은 아주 일시적인 구호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브랜드 교체가 훨씬 빠르게 진행됩니다. 특히, 관광 슬로건의 교체 정도로 그치는 해외의 경우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도시브랜드 교체는 기존 도시 상징 자체를 바꾸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경기도는 지난 2021년 1월 10여년간 사용해 오던 GI와 슬로건을 모조리 교체했고,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현직 서울시장이 서울시 의회 원내 구성이 바뀌게 된다면 전임 시장이 남기고 간 브랜드인 I.SEOUL.U를 꼭 교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도시브랜드의 교체 주기가 과도하게 빠른 것은, 도시브랜드를 도시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상징이자 도시민의 영속적 자부심이 될 만한 아이콘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개인의 업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지자체장들이 스스로를 연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잠시 권력을 위임받아 가꿀 의무가 있는 자가 아닌, 선거의 승자로서 자기 방향성대로 도시를 이끄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도시브랜드는 모든 브랜드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가치의 영속성을 결코 이루지 못하고, 늘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디자인을 4년 주기로 교체하거나, 이전 것을 거의 묻어두다시피 하고 불필요하게 새로운 상징이 만들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 비용은 시민들이 부담하게 됩니다.


일반 기업의 리브랜딩이 그러하듯, 도시브랜드 또한 단순히 트렌드 아웃, 효능감 상실만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트렌드 아웃과 효능감 상실을 판단하는 것조차, 그것이 브랜드가 목표했던 바와 추구하는 가치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였기 때문인지, 혹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브랜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까닭인지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숙고의 과정은 브랜드를 만들었던 과정보다 더 치열해야 하며,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암스테르담의 상징물 철거를 결정한 것은 "이것이 정말로 암스테르담을 상징하는가?” “암스테르담의 상징이 왜 필요한가?”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상징물로 인해 시민에게 끼치는 부작용은 없는가?” “앞으로 암스테르담 상징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의 핵심적인 질문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그런 고민 끝에 나온 도시브랜드는 없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도시 상징은 조례로 묶여있어서 처치곤란이 되어 있거나, 너무 많은 도시 상징들이 뒤엉켜서 무엇이 도시를 대표하는지조차 모르거나, 예산에 허덕인 채로 만들어지거나. 외부의 압력에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죠. 



시민 모두가 브랜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도시가 지닌 영속적 가치, 상징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하는 과정이 절실하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시민 모두가 브랜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도시가 이미 지닌 영속적 가치, 도시 브랜드가 상징해야 할 바로 그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하는 과정이 절실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도시 상징이 애초에 '권력'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권력이 모든 국민에게 있다 하는 현대 민주 사회에서 그 고민의 자리는 더더욱 권력의 정점에 선 누군가가 아닌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일방적 관점에서 공모전을 열고 시민의 의견을 설문조사로 경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며, 단순히 새롭게 명함과 간판, 현수막 등을 바꾸어 다는 비용을 넘어서 새로운 도시브랜드에 필요한 진정한 비용과 댓가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브랜드에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도시와 시민을 오래오래 상징할 수 있는 마스터피스 브랜드를 우리가 언젠가 보게 될 날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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