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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Oct 24. 2022

엄마라는 상처와 회복의 기억

나는 물이 무서웠다.

태내부터였을까?



파편적 기억 속

목욕탕인지 수영장인지 모를 와글거림,

물장구치는 개구쟁이 친구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이내 포기해버린 나는

웽웽거리는 수영장 한편에 우두커니 얼어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누아르 영화를 보고는

"위급 상황을 위해서 운전은 배워야 해. 여차하면 버려진 트럭을 몰고라도 달아나야지."라며 비장하게 운전을 배웠던 그런 각오를, '수영'을 배우는 데는 적용조차 하지 않았다.



딸아이 녀석은 달랐다.

꼬물거리던 아이가 채 서지도 못하고 겨우 앉아 있을 즈음, ** 워터파크에 데려갔다. 파도풀장 가장자리에 앉혀 놓았더니 다가오는 물을 보고는 두 팔을 파닥거리다 까르르 웃는다. 물에 관한 한 나의 DNA 자국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오래도록 수영장에 가지 않고도 물먹은 솜 같은 몸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도 학교에 갈 때도 아침을 미완성한 채 그저 나는 누워있었다. 딸아이는 다른 집에 파자마 파티를 갔다 와서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침에 친구 엄마가 반찬 가득한 밥을 차려 주셨어!"



딸아이의 아침 일상은, 아빠가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에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발라 먹고는 그때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에게 인사하고 아빠 손을 잡고는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물에 젖은 몸이 뽀송하게 마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몸을 흥건히 적신 건, 앙상하게 타들어간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정 엄마를 완전하게 용서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당신의 기질과 그 시절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또 엄마가 되었다. 그냥 어린아이처럼 그 자리에 울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상처가 대물림되지 않으려면 나에게서 그 고리를 끊어야 했다.



여러 갈래의 길들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치유한 덕분에 축축한 몸이 점차 가벼워졌다. 시궁창 냄새가 배기 전에 그 늪을 빠져나와서 다행이었다.



물은 이미 태고부터 생명을 품고 있었다. 나를 살게 하려고 내 몸을 깊은 심해에 담가 주었던 거다. 그렇게 침잠한 채 침대에서 오랜 시간 뭉그적거리며 잉여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물이 조금은 덜 무서워졌다. 이제는 휴양지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도 여유로울 수 있다. 내 마음에 새싹이 트는지 마시는 물도 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물이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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