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이탈리아 여행 02
2022. 10월 2일.
이탈리아 도착 이틀째,
시칠리아 팔레르모 항, 페리에서 내린 후 아침.
카페인이 필요한 가족들이 구글링으로 커피를 살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문 닫음. 뭐.. 한 번에 딱딱 찾아지질 않는다.^^ 그런 게 여행이고 인생인 거지.
다시 찾아 나선 Var에서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크루아상을 샀다. 감동적인 커피와 크루아상~! 진심 이것 때문에 다시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 흠~ 이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우리들의 오늘 일정은 팔레르모에서 머무를 것이지만 체크인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가까운 체팔루에 다녀오기로 한다.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이다.
체팔루
체팔루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앤티크 건물들로 우릴 반겼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빛났다.
길가로 삐죽이 튀어나온 발코니도 낭만적이다. 건물 사이를 이어 놓은 줄에 졸졸 달려있는 만국기. 그중 태극기를 발견하니 미소가 차오른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체팔루 대성당. 길을 따라 마을 높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내를 담당한 딸내미는 부지런히 구글 지도를 보며 좌우를 살핀다.
계단을 오르자 둔탁한 듯 웅장한 성당이 똭! 한눈에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인 것으로 보였다.
노르만 족이 시칠리아를 정복할 당시 지어진 이 성당은 1131년에 건축이 시작되었고 1240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15세기 성당 정면 양쪽의 첨탑이 있는 두 타워가 추가로 증축되었다. 성당 내부 천정은 나무로 만들어진 "바실리카" 양식이다. 정면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인 금빛 모자이크로 채워졌다.
이렇게 성당은 어느 시대에 이 지역이 융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어준다. 중세에는 지역마다 신앙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도시가 융성해지면 어김없이 성당이 지어졌다. 성당 건축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으며 그 시대 최고의 기술들이 동원되었다.
그 후 쇠퇴한 지역이라면 성당의 증축이나 개보수가 없었을 것이고, 다시 융성한 시기를 맞았다면 최신 양식을 덧대어 최고의 성당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기 때문에 도시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도시 전체의 전망을 보자며 산 길을 따라 올랐다.
길이 끊어진 걸 보니 전망대로 가는 루트를 잘못 들어선 것 같았다. 게다가 팔순 넘은 어머님과 함께이다. 그래서 그쯤에서 발걸음을 돌려 바닷가로 내려가기로 한다.
체팔루의 해안, 뜨거운 태양이 '10월'이라는 시간을 희롱하는 듯 작렬한다. 이곳 체팔루의 해변은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 "야외극장"신의 바로 그곳이다.
한쪽 해안은 고풍스러운 돌담이 가지런하다. 돌담 바깥으로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커다란 바위에 철썩이는 파도. 그 파도를 등으로 막아선 남편은 철부지 표정으로 딸아이에게 사진을 찍히며 히죽인다. 어른도 해맑게 만드는 대자연의 풍경이란!
나는 마치 시네마 천국 영화 속의 배역을 맡은 듯이 딸아이가 지정한 곳에 서거나 앉으며 머쓱해서 웃는다. 그리고는 파란 바다를 향해 그리고 파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비현실적인 그곳에서 여행에 흠뻑 취해본다.
체팔루의 관광객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우리들은 그들 틈에서 이방인이자 같은 여행객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반나절의 체팔루 산책을 마치고 차를 세워놓은 주차장을 향한다. 노랗게 빛나는 건물들과 파아란 하늘을 눈에 담는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지금 눈앞에 펼쳐졌던 장면을 기억해 내길!
렌터카 여행을 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안전하고 가성비 좋은 가까운 주차장을 찾는 것이다. 계속해서 딸아이가 검색에 많은 수고를 해주었다. 고맙고 기특한 녀석이다.^^
팔레르모
팔레르모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려 거의 숙소에 도착할 즈음, 미리 저녁거리와 물, 과일, 군것질거리 등을 사러 마트에 들르기로 했다. 이날은 마침 일요일! 문 닫는 시간을 검색해 보니 서둘러야 했다. 카트에 동전을 넣는 것은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동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가 그려있다는 게 다를 뿐~
숙소 호스트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먼저 늦은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하고 이탈리아의 피자를 먹자며 평점이 괜찮은 피자 전문 레스토랑 찾았다.
빈자리가 없어 웨이팅을 걸고는 창에 붙은 메뉴를 보고 피자 종류를 열심히 골라 놓았건만! 피자집에서 피자 주문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허걱!
알고 보니 시칠리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 소도시의 피자집들은 대부분 저녁 7시 이후부터 피자 주문이 가능하다. 화덕에 불을 지피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듯했다. 이들의 문화를 알지 못했던 우리들은 이후에도 가는 곳마다 점심에 피자 주문이 안 되는 경험을 몇 번 더 하고 나서야 인지하게 되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놀라웠다. 메뉴에도 영어를 찾을 수 없다. 간단한 메뉴 읽기를 화면 캡처한 후 영어 번역기를 돌려 더듬더듬 골라야 했다.
시칠리아의 첫 점심은 아쉽지만 결국 파스타로 대신했다. 상차림 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소식좌 가족의 염려는 기우였다.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깔끔한 2인실 방 3개와 키친 공간이 잘 구성되어 있는 한 층을 통으로 빌렸다. 각방마다 화장실과 욕실이 딸려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곳에서 2박을 했다. 여행 중 짐을 싸고 푸는 것만 줄어도 저녁과 아침이 한결 여유롭다.
이번 여행은 제주도 10배 크기인 시칠리아 섬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주하는 계획이었기에, 한 곳에서 2박을 하는 호사는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마지막 여정인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아하하
짐을 풀었으니, 마음도 몸도 가볍게 팔레르모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걸어가기엔 애매하게 먼 거리라서 차를 몰고 대성당 근처의 주차장에 세우고 둘러보기로 했는데.. 띠로리.
네비로 사용하는 'Waze Map'이 자꾸만 좁은 골목으로 안내한다. (이탈리아 도로는 ZTL이라는 제한구역이 있기에 구글맵 이외에 'Waze' 앱을 더블 체크하며 운전하고 있었다.)
그 길은 할렘 같은 동네를 지나는 길이었다. 뭔가 스산한 기분이 들어 네비를 무시하고 무작정 큰길로 빠져나왔고 가족들 모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찔한 우여곡절 끝에 안전한 주차장에 차를 잘 세우고 구도심을 둘러본다.
팔레르모는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오래된 도시이다. 처음에는 페니키아의 식민도시였고, 그 후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9세기 아랍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였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한 문화 중심지 중 한 곳이 되었다.
팔레르모 대성당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명명했던 팔레르모.
대성당을 찾아가는 골목에서 소란스러운 인파를 만났다. 이때만 해도 동네 축제쯤으로 생각했다.
건축양식을 공부해 두니, 지나가며 보이는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이건 '르네상스 양식"처럼 보이는군." 하며 건축물의 생애를 거슬러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드디어 웅장한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섬세한 장식들이 "비잔틴"의 요소를 지녔다.
은은하게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에 이끌려 근엄하게 팔을 벌린 입구에 잠시 멈춰 섰다가 빨려 들듯 걸음을 옮겼다.
성당의 내부는 그야말로 화려한 "바로크 건축양식"의 전형이다. 한 땀 한 땀 건축의 요소들을 장식한 장인들의 손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성당 입구에서 범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아까 지나친 골목의 소란은 팔레르모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행진과 구경꾼들 무리였다. 마침 우리가 성당 안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기념 행렬이 대미를 장식하며 장엄한 모습으로 가까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우연인지 행운인지, 우리가 차를 몰고 할렘가를 지나는 곡예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된 덕분에 대성당 한가운데에서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생생한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좋은지 나쁜지 우리는 무엇으로 알까. 어쩌면 절대적으로 나쁜 일이란 세상에 없는 건 아닐까. 그 모든 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성당 앞 광장, 가지런히 정돈된 조경과 저물어가는 태양이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곧 저녁 시간이다.
노르만 궁전은 문을 닫았기에 아쉽지만 외관만 훑어보며 곁을 지났다.
노르만 궁전도 팔레르모에서 유명한 관광 스팟이다. 9세기 이슬람 왕조에 의해 세워진 후 11세기 시칠리아를 점령한 노르만족이 이곳을 왕궁으로 삼으면서 견고한 요새이자 호화롭고 세련된 주거지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팔레르모에 다시 온다면 그때 보기로 하자. 껄껄.
궁전을 왼쪽에 두고 거리로 나오면, 성벽을 통과하는 문을 구시가지 안쪽 편에서 볼 수 있다. 조각이 섬세하다. 그 문을 통과해 바깥쪽으로 나오니 조형물이 석양을 품고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문을 지키는 무어인들의 조각이 벽면을 장식한다. 무어인이란 711년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둔탁한 성벽 위에 세심한 건물이 올라앉았는데, 아마도 이후 세대의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시칠리아에서의 첫날은 쉴 새 없이 걷는 날이었고, 덕분에 시차 적응을 할 필요도 사라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시칠리아의 운전은 무척이나 거칠다고 느꼈다. 중앙선이 없는 도로도 종종 있고, 차선이 있어도 애매하게 걸쳐 달리는 차들이 많았는데 왜 그런지 그때까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눈에는 그들의 운전이 '비매너'였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무지했었다.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운전 문화가 나름 합리적이고 배려가 넘친다는 걸 알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낯선 것에 대해 눈이 열리기까지는 배움의 시간이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종종 낯선 지점에서 익숙함으로 옮겨가는 사이에 주어지곤 한다.
둘째 날의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