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며
세계여행 274일째 여행기
"아프리카, 여정의 시작"
작렬하던 햇빛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사막에 노을이 찾아온다. 나무 그늘 밑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암사자가 조용히 초원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움직인다. 물웅덩이 주변으로는 그런 사자의 움직임을 알 리 없는 영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바람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찰나의 정적을 깨고 사자가 먹잇감을 향해 맹렬히 달려든다. 풀숲이 격렬히 흔들리고 머지않아 사자가 영양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간다. 어릴 적 TV를 통해 본 아프리카 사자의 사냥 모습이다. 어릴 적 나에게 아프리카는 넓은 초원과 다양한 동물들이 있는 사파리였다.
가난하지만 평화롭던 마을 전체가 반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어린 소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트럭 뒤에 올라타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반군세력에 의해 소년병이 되도록 강요받고 훈련받는다. 반군세력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고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노역시키며 그곳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를 전 세계 시장에 유통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 확장한다. 대학생 때 본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이야기다. 대학생인 나에게 아프리카는 가난과 폭력이 만연한 내전의 땅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터키를 떠나 남아공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며 오랜만에 긴장했다. 우리가 이용한 항공사는 에티오피아 항공이었다. Star Alliance에 소속된 국적기임에도 비행기를 타며 긴장했던 건 에티오피아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심지어 좌석마저 비행기 가장 뒷자리에 배정되면서 가는 길이 쉽지 않겠다 느껴졌다. 그렇게 맨 뒷자리에 앉아 속으로 하쿠나 마타타(문제없어, 다 잘 될 거라는 뜻)를 외치고 있을 때 즈음, 이륙을 위해 비행기 문이 닫혔는데도 우리 옆자리는 물론이거니와 통로 옆 반대편 좌석까지도 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는 6시간 동안 각자 세 자리씩 차지하며 누워서 올 수 있었다. 이륙과 동시에 '에티오피아'라는 단어가 줬던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의 환승도 순조로웠다.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 도착한 게이트 앞은 깨끗하고 한산했다. 창문 밖으로 새벽안개 속으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 에티오피아의 모습은 비록 낙후돼 보였지만 말이다. 대학생 때 에티오피아로 봉사 활동을 왔던 아내는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그렇게 공항에서나마 짧게 에티오피아를 마주한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케이프타운으로 향했다.
케이프타운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들고 한국인 여행사 직원분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 쾌청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우리를 반긴다. 8월의 아프리카는 계절적으로 겨울이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고 낮에는 선선한 늦가을 날씨다. 아프리카라면 무더운 여름만 떠올렸던 나의 무지가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이다. 여행사 직원분께서 아침까지 비가 내리고 그친 덕에 며칠 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며 우리는 운이 좋은 여행자라고 말씀하셨다. 공항으로 가는 길 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언 헤드를 바라보니 우리가 남아공에 도착한 게 실감이 났다.
케이프타운 시내는 마치 뉴욕의 시내 같았다. 남아공도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 한듯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거리에 흑인들만 가득하다는 점이 아닐까. 여행사 직원분께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주의할 점을 안내받고 숙소에 들어왔다. 복층 구조의 원룸 타입인 숙소는 이곳이 흡사 뉴욕 맨하튼의 고급 펜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고급진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아프리카 도착 첫날, 나는 그렇게 내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들을 하나씩 깨며 생각했다. 내가 진짜 '아프리카'에 오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