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40대! 하와이 어학원에서 만났던 언니들에 대한 기억 모음집
(*사진 속 인물들은 이야기속 인물들과 동일하지만은 않습니다. ^^)
하와이에서는 약 2년을 살았고 그동안 어학원은 두 군데를 다녔었다.
그중 하와이에서 처음 다녔던 어학원은 일본인이 많이 다니던 어학원이었다.
사실 하와이 어학원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이 전부였다. 사정상 하와이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입학 신청을 할 수 없이 시카고에서 입학 신청을 진행했기 때문에 어학원의 상태를 속속들이 알 수 없었고 혹시라도 사기를 당하거나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었다. 아무래도 시카고 어학원에서 겪었던 씁쓸한 경험 덕분에 나는 더 꼼꼼하게 따질 수밖에 없었다. 서툰 언어로 어떻게든 더 이상 실수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궁금한 것을 꼬치꼬치 캐묻는 이메일을 수차례 주고받고서야 마음이 놓일 수 있었다.
여느 어학원이든 반 배정을 받기 위해서 오리엔테이션엘 꼭 참석해야 하였다. 하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와이에서 약 일주일이 지난 후 어학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였다. 어학원 작은 방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이었는데 교실에 온 사람들을 둘러보니 나까지 네 명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다들 조용히 책상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나를 제외한 세명이 일본 여성이었다. 딱 보기에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었다. 서른 살 이후 하와이 여행을 다섯 번 정도 했던 나였지만 하와이에 일본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간단한 시험을 통해 처음 배정받은 교실은 초급에서 한 단계 윗단계 반이었다. 교실의 분위기는 시카고 어학원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시카고 어학원이 작은 태국이었다면 하와이 어학원은 작은 일본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는데! 한국 나이로 서른셋의 내가 어학원 막둥이었다는 사실이다!
교실은 '내가 지금 하와이에 와있는 것인지, 일본에 와있는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로 일본 중년 여성들도 가득 차 있었다. 태국 남성 한 명, 중국 여성 한 명, 대만 여성 한 명, 그리고 나와 미국 선생님을 제외한 약 스무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전부 일본인이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영어보다 일본어가 더 많이 들렸다. 내가 그 반에서 배운 일본어가 영어보다 더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을 일이었다.
처음 배정받았던 교실의 일본 언니들은 늘 조용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는 늘 각자 조용히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한 모습이 짝꿍과 스피킹 연습을 할 때까지 지속되어 선생님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나는 이 많은 일본 언니들이 왜 와 있는지 궁금하였다. 남편의 일을 따라 이 곳에 온 것인지 아니면 이민을 온 것인지... 혹은 나처럼 꿈을 위해 가정을 잠시 뒤로 하고 온 것인지 궁금하였다.
그 궁금증은 차츰 해소가 되었다. 하루는 사오리 언니가 우에노 언니에게 노란색 티셔츠를 건네주었다. 그 티셔츠에 대해 말하길 자신의 딸 학교에서 받은 티셔츠인데 잘 맞을 거 같다고 하였다. 그다음 날은 버스에서 아유미 언니를 만났다. 아유미 언니는 헐레벌떡 버스에 뛰어올라 나를 발견하고 내 옆 자리에 앉으면서 '딸 등교시키고 오느라 늦을 뻔하였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엔 리사 언니가 문법 선생님께 '어학원 방학을 이용하여 딸과 함께 디즈니 랜드'를 다녀왔다고 하였다.
그렇다. 대다수의 일본 언니들이 하와이에 온 이유는 아이들 학교 때문이었다. 부모가 어학 비자를 받으면 그들의 자녀도 미국에 함께 올 수 있는 비자가 발급되는데 그 비자로 미국 공립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자식을 위해서 비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언니들은 어학공부를 열심히 해야 비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언니들은 늘 수업시간에서 생기가 넘쳤다. 조용하지만 숙제도 열심히 해오는 언니들의 모습에서 언니들의 여고시절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학원의 수업은 '듣기, 말하기, 쓰기(문법)'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시험을 통해 정해진 정규반을 기본으로 두고 과목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른 반과 합반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특히 기억에 남던 수업은 문법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가 그 문법 선생님을 흠모했기 때문이다.
문법 선생님은 키가 190cm 정도 되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50-60대 백인 남자 선생님이었다. 내가 그 선생님을 흠모하는 이유는 눈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기운이 없고 느릿느릿한 모습도 멋져 보였다. 그 모습이 서정적이면서 우아해 보였다. 선생님이 가끔씩 수줍게 미소를 짓거나 내 이름을 부르며 질문을 할 때면 내 가슴은 여중생처럼 콩닥콩닥 뛰었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선생님의 과거 때문이었던 거 같다. 선생님은 원래 시나리오 작가로 일을 하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서로 통하는게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선생님은 너무 어릴 때 결혼을 해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결혼반지를 기념품 가게에서 저렴한 반지를 사서 꼈다고 했는데 그런 과거가 시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느릿느릿 말하고 기운이 없는 선생님이 좋아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도 그 선생님 수업만 고집했었다.
문법 시간은 많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반 학생들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문법 시간에 기억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네 명 있었다.
한 명은 한국 오라버니. 그 오라버니는 신학생으로 유학을 왔는데 언어가 부족해서 어학원에 입학한 상황이었다. 오라버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수많은 일본 학생들과 수업을 받을 때 늘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파일을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임산부 학생 토모코. 그녀는 일본에서 호텔리어인 남편을 따라 하와이에 오게 된 경우였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때 그녀의 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수업을 할수록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왔었다. 하와이는 더워서 화장을 하기 귀찮을 때도 있는데 싱글인 나도 귀찮아서 민낯으로 어학원을 갔는데 그녀는 배가 남산만 해질 때까지 항상 풀 메이컵을 하고 샤랄라 한 드레스를 입고 수업에 참석하였다. 그렇게 한껏 꾸미고 온 토모코는 늘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퉁명스러운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아마 배가 많이 나와 불편 해던 모양인데 일본 영화에서 볼법한 불량 학생 같아 보여 말 시키기가 무서웠다. 선생님이 스키핑 연습을 시키고자 짝을 지어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됐었다. 제발 그녀와 짝꿍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그런 난 늘 그녀와 짝꿍이었다. "내가 먼저 물어볼까?"라고 물으면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떡였다. 우등생처럼 맨 앞자리에 앉아서 다 틀리는 나와는 다르게 불량학생 같아 보이는 그녀의 실력은 늘 우등생이었다. 겉모습만 불량학생인 토모코는 늘 삐딱한 모습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삭 때까지 수업에 임했고, 몇 개월 후 토모코는 예쁜 딸을 안고 학교 핼러윈 파티에 참석을 하였다. 엄청 밝아진 얼굴로 말이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은 유리카 언니. 유리카 언니는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볼 법한 하이톤 음성에 쾌활한 캐릭터였다. 커트머리에 늘 밝은 표정으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하던 언니다. 그런 적극적인 성격 때문에 나는 가끔 언니가 미웠다. 왜냐면 수업이 끝났는데도 그칠 줄 모르는 언니의 뜨거운 열정이 빚어낸 질문 공세 때문에 종이 쳤는데도 집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문법 선생님은 부인이 일본인이라 일본말을 잘하였다. 그래서 언니의 질문에 영어로 설명을 해도 언니가 못 알아들을 때면 일본말로 설명을 하기도 하고, 언니가 일본말로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소외감이 느껴져 문법책을 아이매직 삼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었다.
난 유리카 언니랑 수업시간에 개인적으로 말을 섞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가끔은 괜히 일본 언니들을 이겨야 한다는 감정이 욱 하고 올라올 때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언니들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목에서 유리카 언니를 마주치게 되었다. 언니는 늘 자전거를 타고 학원을 오가곤 했는데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좀 피해 다니기도 했는데... 그날은 마주치고 만 것이었다. 나를 발견한 유리카 언니는 자전거에서 내려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나는 속으로 '먼저 가세요'라고 하였지만, 언니는 나와 함께 발을 맞추며 걸어가 주었다.
언니는 일본 드라마 속 해탈한 캐릭터처럼 하늘을 보면서
"아~ 날씨 참 좋다~ 그렇지?"
라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 캐릭터 마냥 어버버 거리며 "아. 정말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말인지 방귀인지 아무 말이나 내뱉었고, 대화의 주도권은 언니에게 있었다.
어쨌든 그날 언니와 함께 집을 가면서 언니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언니의 나이는 50살. 하와이에서 3개월 살기의 삶에 도전하고 있었다. 일본 약국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하던 언니는 어느 날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일을 잠시 쉬게 되었고, 그때 언니는 하와이에서의 삶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하와이라는 아름다운 곳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버킷리스트였기에 더 늦기 전에 시작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마음껏 즐기고 공부를 하는 언니는,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면 여행 가이드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횡단보도가 보이자 일본 드라마 속 힘찬 여주인공 마냥 나를 휙 돌아보며
"난다 내일 봐!"
라는 말을 남기고는 언니는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자전거를 타도 휭 떠나 버렸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은 후 언니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주황빛과 보랏빛이 언니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문법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났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리카 언니가 또 손을 들었다. 주황빛이든 보랏빛이든 수업 끝났는데 질문을 하는 것은 내 얼굴을 똥 빛으로 만든다.
"에릭! (선생님 이름) 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언니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눈물이 고여있었다. 우리는 모두 아쉬워하였다. 언니는 그동안 너무 행복했었다며 모두들 건강하라고 하였다. 그게 언니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언니는 일본에서 여행 가이드가 되었을까?'라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다들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보면 언니는 '어학원 숙제를 하러 와인바에 간다.'라고 하였다. 혹여나 영화에서 처럼 잘생긴 백인 중년의 남성이 데이트를 신청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라며 수줍게 웃으며 농담이라고 하였었다. 난 그 농담 같은 말이 현실로 이뤄졌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 언니가 와이키키 해변 어딘가에서, 큰 파라솔 아래 농담 속 근사한 백인 중년 남성의 어깨에 기대 '하와이안 블루' 한 잔을 마시고 있길 꿈꿔 본다. 그게 아니라면 농담 속 남성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와이키키를 거니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언니는 60살이 넘은 독일에서 온 로라 언니였다. 언니라고 말하기엔 내 엄마뻘 되는 로라 언니는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어학원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로라 언니는 (몇 개월 뒤 어학원엔 브라질에서 온 60대 마리아 언니도 있었다.) 또한 어학원에서 가장 순수하였다. 그래서 모두들 로라 언니를 설명할 때 '귀여운 독일 60살 학생'이라고 설명하였다.
하루는 어학원에 대체교사가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굉장히 나이가 많은 남자 백인 선생님이었는데 본인은 매일 수영을 하여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한다면서 젊음을 과시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종일관 유머를 날렸는데 그 유머가 하나도 재밌지 않고 오히려 불쾌하였다.
"이웃집에 시끄럽게 짖는 개를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였어!" 라면서 셋째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혼자 깔깔 웃고, 로라 언니가 질문을 하면 "뭐라고? 안 들려~"라고 장난을 치고 혼자 깔깔 웃는 등 너무 유치하고 이상한 유머를 구사하였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하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 웃어주는 분위기 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귀여운 로라 언니가
"하나도 재미없어! 기분 나빠!"
라며 단호하게 꽥 소리를 쳤다. 언니를 보니 새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언니가 저주를 퍼부으면 하와이 화산이 다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순간 교실 분위기는 싸해졌다. 모든 학생들은 대신 말해준 로라 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체교사를 쳐다보았다. 대체교사는 갑자기 귀가 안 들리는 노인처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라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로라 언니는 귀여운 언니였지만 귀엽지 만은 않은 진정한 어른이었다. 언니덕분에 그제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멋있어 보이고 싶어 졌다. 바로 어학원 캐비닛에서 엄청 큰 한영사전을 발견하고 나서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왠지 그 사전을 들고 다니면 좀 있어 보일 거 같았기 때문이다. 어학원 사무실에 문의하니 대여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난 그 무거운 사전을 매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로라 언니가 나를 수줍게 불렀다.
"난다! 나 선물을 준비했어!"
"무슨 선물이요?"
"쨔쟌!"
로라 언니 손에는 작은 녹색 책이 들려 있었다.
"난다 사전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난다 주려고 집에서 찾은 사전을 가져왔어!"
감동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너무 감동하여 '땡큐 땡큐'를 연신 내뱉었다. 그러나 난 그 사전을 결코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언니가 준 영어 사전은 '한글 영어' 사전이 아닌 '독일어 영어' 사전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전을 보기 위해서 난 독일어 공부를 먼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학 연수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40대 여성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결혼을 일찍 할게 아니라 하와이에서 살았어야 하는데...' '내 대신 많이 즐기고 와 줘~' 등의 이야기를 하며 날 많이 부러워하였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살아보니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살아보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싱글에 어리고, 자유롭거나 부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학원 학생들은 40살 이상의 부녀자가 반 이상이었다.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전부 나누지는 않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어떻게 하와이에 오게 되었는지, 왜 오게 된 것인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알아 갈 수 있었다. 상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하와이에서 살기를 실천하기 위해 큰 포기를 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나 역시 하와이에서 살아 보기 위해 그동안 내가 쌓았던 모든 것을 놓아 버렸었다. 그러나 하와이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와이에 살면서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배울 수 있었고, 하와이 어학원 언니들을 보면서 '꿈을 이루는데 중요한 것은 간절함과 시도'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꿈을 이룰 때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알로하 언니들이 너무도 그립다.
알로 하오에~ 알로 하오에~ 꽃 피는 시절 다시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