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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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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순례자_이재연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순례자/이재연


입속에서 얼음을 녹인다

어느 때에 두 발이 남루해질 것이라고

돌이 쌓여 있는 좁은 길을 지나간다

새벽 불 켜진 상점을 찾는 일일지라도


너와는 입장이 달라

매번 입장이 달라

연휴에도 흐린 유리창 밖에서

푸른 꽃이 피고 버지는데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어디에서도 흔한 포유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름이 많은 어미를 바라보며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그것이 생활 속에 남아 있어

잔물이 불어나는 물가에 서 있다


목이 없는 꽃병 속의 물을 갈아 주며

내가 단지 건물 속에 갇혀 있다면

건물이 우리에게 다정히 속삭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 


하늘도 알고 있다

홀로 자고 일어난 노인도 알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조상의 이름을 새긴 돌 위에 사월의 눈 내린다

검불 속에서 머위 잎이 쑥 올라온다


새벽별 떨어지던 자리에

무거운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며

곡우가 지나간다


 이 시의 핵심 문장은 어디에 있을까. "주름이 많은 어미를 바라보며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생각해 보자. 


 엄마의 죽음 앞에 놓인 화자는 1연에서 말하듯 입 속의 한기를 녹인다. 어미의 죽음 앞에서도 발을 동동거리며 '발이 남루해짐'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항상 화자와 뜻이 달랐던 엄마, 그 속상함과 관계 맺음이 계속된 기회였던 '푸른 꽃'이었는데, 그것이 이제 죽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3연에서 보이듯 지구는 온갖 죽음과 동물, 곧 '흔한 포유류'가 있고 죽은 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의 죽음은 삶에서 남아있어 그간 참았던 눈물이 계속 고여있다. 해빙기를 맞이해서 잔물이 불어나는 물가처럼 말이다. 목이 없는 꽃병 속의 물을 갈아주며 - 무엇일까, 아무래도 무덤 앞에 핀 꽃에 물을 주는 등 - 자신이 꽃처럼 어딘가에 갇혀 있다면, 그곳에 같이 있다면,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하늘도 알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그 비석 위에 눈이 내리고, 검불 - 마른풀 - 에서 머위 잎이 쑥 올라온다. 봄이 와도 눈이 내리는 울릉도를 상징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끝에서 시작은, 죽은 풀에서 새순이 올라오는데, '새벽별이 떨어진' 곳에 엄마의 죽음은 내 삶의 길에 '수레바퀴'가 남겨졌고, 4월의 비, '곡우'가 지나간다. 


 몇 번을 다시 읽어봤을 때 어쩌면 친숙한 이야기를 다른 사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르게 들렸다. '순례자'라는 제목도 평범할 수 있으나, 그 순례의 길 자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움푹 들어간 가까운 이의 죽음을 은연중에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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