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무한의 순간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를 믿는다. 하지만 이 믿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 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불편하고도 중요한 윤리적 딜레마로 다가온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룸 넥스트 도어>(2024)는 이러한 질문에 깊은 통찰을 제시하며,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 속 주인공 마사(틸다 스윈튼)는 종군 기자로서 늘 죽음에 맞닿은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길 원한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전쟁터의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홀로 남겨지는 근원적 고독이다. 마사는 오랜 친구 잉그리드(줄리앤 무어)에게 마지막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고, 잉그리드는 어렵게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사는 잉그리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삶을 마감한다. 이 극적 반전은 단순한 영화 장치에 그치지 않고,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사생관을 탐구하게 만든다.
마사의 선택은 잉그리드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잉그리드에게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사가 죽음을 맞이한 공간, 테라스 선베드로 그녀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원래 마사는 자신의 방, 닫힌 문 뒤에서 떠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장소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를 듣고,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사색을 즐기던 테라스 선베드인 것이다.
그 장소는 단순한 죽음의 배경이 아니라, 마사가 삶의 충만함을 마지막까지 느낄 수 있었던 시공간이었다. 결국, 그녀는 가장 평안한 상태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떠나고자 했다. 영화는 이를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색채를 통해 표현한다. 죽음을 어둡고 심각하게 그리지 않는 연출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마사의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영화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무한의 세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사의 딸 미쉘의 등장을 통해 드러난다. 미쉘을 연기한 배우가 틸다 스윈튼이라는 점은 단순한 1인2역 설정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연결을 상징하는 영화적 장치다. 같은 얼굴의 산 자와 죽은 자의 모습은, 삶은 유한하지만 죽음은 영원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미쉘이 마사가 떠난 선베드에 누워 엄마와 같은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듣는 장면은 고요하고 엄숙하다. 여기에 잉그리드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소설 『죽은 사람들』의 한 구절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아스라이 내리는 흰 눈"을 낭독하는 장면이 더해지며, 삶과 죽음을 초월한 인간 존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인간 존재의 유한성, 개인을 넘어선 보편적 생과 사의 본질, 그리고 이를 초월하는 인간 존엄의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