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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크홀릭 Mar 19. 2017

내것인지 네것인지 모를 지역상표

지자체와 생산농가의 다툼

이명박 정권 이후 공정성을 상실한 지상파에 대한 불편한 심사 때문에 TV를 즐겨보지 않지만 KBS의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은 자주 보려고 노력한다.


지방자치제의 성공이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려운 정치현안을 시나브로 해결해 나갈 희망이라고 생각하는지라 이 방송을 보면서 지역마다 일어나는 분쟁과 다툼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고민해보곤 한다.

2017년 3월 14일에 방송된 “송산포도 브랜드를 지켜주십시오.”라는 방송은 화성시 관할의 송산면 포도농가들과 화성시의 브랜드 다툼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통의 도시인이라면 ‘그깟 포도 상표 하나 갖고 지자체와 농민들이 싸움이 났나? 잘들 좀 하지.’라고 넘어갈 일이겠지만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

최근 대선 주자로 나선 정치인 중에는 지방분권과 자치를 힘주어 말하는 후보들이 과거와 달리 많아졌는데 참으로 고맙고 바람직한 일이다. 대선후보가 아니라도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수입 농산물에 비해 떨어지는 농업경쟁력은 만약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국가 존립에도 영향을 끼칠 무거운 과제다.


농수특산물의 비중이 큰 지방의 산업과 경제에서 눈여겨볼 것 중 하나가 지역상표이다.

지역상표, 지역 브랜드, 공동 브랜드라고 흔히 말하는 지역의 명칭과 상품이 결합된 상표를 정확히 명명하는 단어가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이다.

지리적 표시에 관련된 정의 및 운영방안은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TO(World Trade Organization)를 통해 전 세계적인 합의를 거친 바 있고 최근에 잇따르고 있는 FTA및 TPP와 같은 개별 국가 간 다자간의 무역협정에서 중요한 협상과제로 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콩테 치즈, 보르도 와인도 지리적표시제도에 의해 브랜드의 가치를 법적으로 보호받는 상품이다.

굳이 외국이 아니더라도 안동 간고등어, 성주 참외, 제주 은갈치와 같은 상품들은 다른 지역의 동일한 상품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커서 산지 표시 도용이 많았는데 해당 생산자들이 모여서 만든 법인이 지리적 표시 상표로 출원등록하여 보호받고 있다.


브랜드 파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대기업의 상품에 비해 지역상품의 브랜드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착각인데 의외로 지역상품의 브랜드는 인지도가 크다. 지리적 표시는 그 명칭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천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불과 몇 년 전 막대한 홍보비용을 투입해 당시 인기연예인들을 대거 등장시키며 만들어낸 삼성전자의 “Talk Play Love”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반면 ‘안동 소주’의 명성을 알고 있는 소비자의 수는 앞서 예시한 “Talk Play Love”를 기억하는 소비자보다 적을까? 분명 안동 소주의 소비자 인지도가 훨씬 높을 것이다.


이렇듯 지리적표시가 갖는 브랜드 파워 때문에 지역명과 상품명이 결합한 명성 있는 브랜드는 특허청에서 원칙적으로는 상표 출원을 거절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라는 무형자산을 일개 개인이 독점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지리적표시를 상표로 출원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는 해당 지역의 생산자들이 법인을 설립해 상품의 품질을 유지하고 대중이 인지하고 있는 명성에 걸맞는 상품을 생산하고 있을 때에만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이라는 상표를 준다.

또한 지리적 표시 증명표장이라는 유사한 제도도 있고, 반면 브랜드의 재산권 보다는 상품의 품질 자체에 중점을 둔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표시제도 병행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리적표시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인데 한-EU FTA협상을 시작하면서 협정에 삽입할 지리적 표시 보호물품을 유럽연합에서 수천 개를 들고 나오자 부랴부랴 지리적표시제를 확대 시행한 게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이번 화성시와 송산면 포도생산농가들이 대립하며 만들어낸 불화는 앞으로도 많은 지자체에서 일어날 것이다. 지자체, 생산자 심지어는 법적 대리인조차도 이러한 제도의 목적과 미래지향적 운영방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성시 송산면은 질 좋은 포도의 주산지로 지역 농민들은 오랜 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송산포도’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음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다.

화성시는 이런 ‘송산포도’의 명성을 기반으로 하여 화성시 포도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꾀했음은 분명 선한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송산포도 생산농가들은 송산의 명칭은 송산면의 포도 농가만 써야 한다는 전제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고, 화성시는 기왕이면 화성시 전역으로 브랜드 파워를 확대해서 활용하자는 의지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생산농가에 지자체는 충분한 사업의도, 목적을 설득하지 못했고, 포도생산농가는 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송산포도에 도움이 될 공동브랜드 사업이라는 생각에 덜컥 지자체가 내민 합의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명확하게 회의 테이블로 올라오지 못하고 그저 ‘내 생각이 당연하지. 말해 뭐하나.’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대화의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일이 틀어저버리자 이제 이 사건은 TV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화성시와 송산포도 생산 농가에 묻고 싶다.

이미 지리적표시의 상표 권리를 확보하고 있는 무주, 상주, 영천에 비해 송산포도는 정말 더 나은지? 소비자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자체와 생산농가가 합심하여 지리적표시 이후의 사업(와이너리, 2차가공품, 농가 레스토랑, 해외 수출 등)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성시와 송산포도는 타 지자체와 농가에 비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나날이 바뀌고 있는 강수량과 온도 때문에 언젠가는 바뀌게 될 적정생육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지리적표시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송산면 포도생산 농가 중 낮은 품질의 상품을 내 놓는 농업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젊은이들이 앞으로도 이 포도농사를 물려받아 유럽의 그것과 같은 전통과 역사가 이어지게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지리적표시의 권리자인 법인은 충분한 자본금과 관리이력을 갖추었는지? 그 법인은 농가교육과 박스 바꿔치기로 브랜드 가치를 침해하는 이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고 있는지?

지자체는 중장기적으로 지역 대표특산물인 포도 산업을 육성할 조례와 시행규칙은 준비해 두었는지?


어쩌면 가혹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생산농가들과 지자체의 긴밀한 협의가 우선이지 “니 것! 내 것!”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호 이해관계의 원만한 조정, 미래 발전을 위한 협업과 같은 말들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역의 현안들이고 결국 소득과 세수, 예산 과 같은 구체화되는 문제들 때문에 당사자들이 쉽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현실의 이해관계이다.

그러다보니 외부전문가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양측의 기세에 눌려 소심히 입을 닫는 경우도 있다. 


결국 현실의 이해관계에 매달리다 보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서서히 약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기반을 붙잡기보다는 지금의 핵심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생각으로 지자체와 농민이 합의 하는 것만이 답이다.


고대 이스트 섬의 인류가 모아이라는 석상만 남겨두고 사라진 이유가 현재의 자원이 풍족하다는 안일한 생각 탓에 자원이 고갈되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해서라는 분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부디 화성시와 송산면 농업인들이 똘똘 뭉쳐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전국 많은 지자체들이 핵심자원이라 할 수 있는 지역 특산물의 성장발전 방향을 수립하는데 있어 이번 사건을 남의 일이라 생각 말고 주의 깊게 살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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