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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11. 2023

인생루틴 그러니까 남해



2016년,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내려다 본 풍경




“우리가 해인이 하루 봐줄 테니 어디든 다녀와~”


물론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했다. “어휴, 아니에요, 어머님 너무 힘드세요.”와 같은 말로 정성껏 거절했지만 어머님은 강력하게 다시 여러 번 제안하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네! 갈게요!”라고 대답할 만큼 강단 있는 며느리는 못 돼서 세 번 정도 예의 바른 거절 끝에 날짜를 잡았다.


“그럼 새해 첫날 다녀와도 될까요?”


그렇게 우리는 남해로 향했다. 남해는 무려 4시간 이상의 장거리 운전이 필요한 곳이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떠난다고 하지만, 비행기를 타면 일본이나 중국정도는 쉽게 다녀올 정도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즐거웠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소음 걱정 없이 노래하고 소리 지르다 그것도 지치면 수다를 떨었다. 즐거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2016년 1월에 처음 남해로 떠났다. 생활정보를 소개하는 아침 TV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일출명소라며 보리암에 랜턴을 끼고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리암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12월은 네 번째 직장의 계약이 종료된 시점이었다. 끝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고 센터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 계약직 열댓 명 앞에서 구십 도로 허리 숙여 “죄송함다” 인사하며 끝이 난 겨울이었다. 


그런 허탈한 마음에 떠오른 것은 보리암이었다. 보리암으로 가는 방법을 여러 번 숙고했다. 최선의 코스로 선택한 것은 순천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 회사에서 함께 계약 종료를 맞이한 친구를 순천에서 다시 만났다. 함께 순천만에 들러 맘껏 겨울 갈대 구경을 했다. 보기 힘든 흑두루미 떼를 만났으니 올해 팔자가 필 거라는 순천만 가이드의 희망찬 운세도 들었다. 순천의 시끌벅적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내고 버스를 타고 남해로 향했다. 남해 터미널에서 보리암 인근 마을에 도착하는 데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로 여행하기 정말 힘든 동네구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저녁 모임 시간을 따로 마련해 같은 날 보리암에 오르는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자차로 이동하는 여행자를 소개해 준 것. 다행히 그날 차가 있는 멋진 언니 한 분을 만나 매우 편하게 보리암에 오를 수 있었다. 



2023년, 보리암 




보리암에 올랐을 때 처음 본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탁 트인 풍경이 나를 껴안았다. 그곳에서 한참 넋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그곳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허기짐을 못 이겨 결국 산을 내려와야 했다. 안타깝게도 하산은 각자의 몫이라 보리암에서 인근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했다.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데 수많은 차가 우리를 지나쳤고 소형차 한 대가 끼익 멈추더니 후진을 했다. 아주머니 두 분이 잔뜩 화를 내셨다.


“지금 남해 시골이라고 무시하나!! 여기도 엄청 무서운 사람 많다니까! 이상한 사람도 많아! 아가씨들이 클날라 하네!” 하며 상주 은모래 해변에 내려주셔서 남해의 따뜻한 겨울 모래사장에서 한참을 누워있었다.


나는 그렇게 매년 남해로 향했다. 매년 1월이면 꼭 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2017, 2018, 2019, 2020년 1월, 모두 남해에 갔고 보리암에 올랐다. 그러는 사이 단골 가게가 생겨 안부를 묻는 사이도 되었다. 2020년 1월 보리암에 올라 아이를 바랐고 그 여행에서 아이가 생겨 태명을 보리로 지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21년, 22년 두 해를 건너뛰었다. 매년 1월이면 마음속엔 항상 남해가 있었다.


그러니 내가 남해를 가는 건 당연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시댁 찬스로 숙소를 예약하려 보니, 없다. 괜찮다 싶은 펜션은 이미 예약 마감. 정말, 정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싶은, 말도 안 되는 방이 23만 원의 가격으로 올라와 있다. 정말 그것뿐이라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했다. 여행 일주일을 앞두고 급히 한 예약이니 이만하면 잘한 거라고 만족한다. 


12월 31일 저녁 6시,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사장님께 “내일 혹시 보리암 갈 수 있을까요?” 여쭈어보니 “거는 쳐다도 보지 마라! 낼 같은 날 어데를 간다고! 일출은 가만히 여기서 보셔요. 우리 창문으로 다 보인다니까” 맞는 말이다. 숙소에서도 충분히 보인다는 것을 알고 왔다. 1월 1일,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려면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전날 오후 4시부터 차량 통제를 해서 진입로에서 보리암까지 약 10킬로 정도의 산행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깔끔하게 포기하고 일출은 숙소 앞 바닷가에서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만약 이 여행에서 보리암을 오르지 못한다면 올해 내내 마음속에 보리암을 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꼭 가야만 한다. 일출을 보고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넉넉히 배를 채웠다. 오전 9시,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보리암으로 향했다. 한데, 이게 웬걸? 사람이 없네? 우리는 대기 없이 주차장에 진입했고 어렵지 않게 보리암에 도착했다. 제1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제2주차장으로 향했다. 두 번째 주차장에서 매표를 한 뒤 걸어서 2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보리암이다. 새해 첫날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니, 이게 웬 행운인가?  


매년 보리암에 함께 왔던 짝꿍의 손을 잡고 우리는 상사바위에 올라 한참을 가만 바라보았다. 안타깝게도 안개가 잔뜩 껴 보리암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는 볼 수 없었지만, 내가 다시 이곳에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보리암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보다 훨씬 넓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상사바위다. 보리암에서 30분 정도 산을 올라야 하며 굉장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이곳에는 정말 드물게 한, 두 명씩 사람들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너무 좋다”를 연발하지만 셀카밖에 못 찍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 찍어줄 손이 귀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기꺼이 손을 빌려준다. “혹시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여러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며 “백 장 찍어야 한 장 건져요” 하며 그들의 웃음과 부담을 동시에 자아내며 무척 즐거웠다. 정말 모두에게 인생 사진 남겨줄 심산으로 허리 꺾어가며 찍었다.


나는 이곳에 왜 올까, 이곳을 왜 좋아하는 것일까, 바위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처음 보리암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이곳에 절망을 두고 갔구나. 그 생각에 도달하니 머리가 시원해진다. 출산 이후 도달하지 못한 소망과 욕망 사이 2년 묵은 절망을 두러 이곳에 왔다. 들숨에는 희망을 마시고 날숨에는 절망을 뱉었다. 나는 이곳에서 켜켜이 묵은 절망과 결핍을 애도한다. 하루를 계획하고 반복하는 루틴처럼, 매년 행했던 인생의 루틴. 새해가 되면 반복했던 이 행위를 통해 나는 조금씩 나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짝꿍과 손을 꼭 잡고 내년에도 또 오자 약속했다. 부디와 제발의 이름으로 깊고 나직하게 애도하자. 쓰라린 마음도, 이루지 못한 소망도, 질투와 시기도,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의 결핍도.


올해의 시작을 보리암에서 맞이했으니 나의 새해는 기필코 밝을 것이다. 혼란하고 방황했던 마음을 잘 보내주었으니, 적어도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이다.






- 절실한 불교신자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나는 종교가 없다. 신앙과 믿음이 없는 사람이지만 절을 무척 좋아한다. 보리암에 그렇게 매년 다녔으면서도 초 한 번을 사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누렸던 기쁨, 내려놓고 가는 마음에 대한 보상으로 금일봉을 하고 싶어 사무소에 들어갔다. 신자가 아니라 잘 몰라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살님께 “실은 제가 거진 매년 오는데, 20년 1월에 여기서 빌고 아이를 낳았지 뭐예요” 하니 주변 눈치를 쓱 보시다가 갑자기 절 떡 하나를 꾹 찔러 넣어주시며 눈을 찔끔 감는다. ‘너만 먹어’ 하는 눈초리에 “감사합니다!!!!!!” 하며 나왔다. 예상하시겠지만 절떡은 무척이나 맛있었고 짝꿍은 내게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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