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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Jan 31. 2023

살아 있는 걱정 인형 납시오

[1화] 10년 만의 미국 방문기(를 빙자한 '나' 관찰 보고서)

우리에게 다시 없을 시간을 고이 붙잡아

10년 전 미국에서 내 룸메이트였던 친구(이자 언니)는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이 사실이 이번 미국행을 보다 쉽게 결정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미 몇 년간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있기에, 의사소통 문제나 숙소 문제 등이 아주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차례 친구와 줌(zoom)으로 화상 회의를 하며,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비행기 표를 구매할 수 있는 여행 일정을 함께 결정하고, 필요한 숙소를 예약하고, 미국에서의 일정을 계획했다.

   우리의 원대한(?) 계획은 이러했다. 나의 미국 도착 일정에 맞추어 애리조나에 살고 있는 친구도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와 며칠 동안 파견학생 시절 다녔던 대학교와 살았던 동네를 함께 둘러본 다음, 친구가 현재 살고 있는 동네로 가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계획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사실 내가 염려한 부분은 10년 만에 다시 겪게 될 우리의 동거(!) 생활이 순탄할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 둘은 10년 전 미국 생활을 하기 전부터 같은 동아리의 선후배로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오히려 미국에서 룸메이트로 함께 산 이후 그 여파로 인해 조금 멀어진 채 흘려보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서로 조금 더 배려하고 맞추어 가며 잘 지낼 수 있겠지?', '한 학기도 아니고 고작 3주인데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약간의 불안과 염려가 생겨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불안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10년 만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어쩌면 평생 이 친구와 몇 주 동안 붙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싶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지금보다 금전적인 여유가 더 생겼다 한들, 누구 하나가 가정을 꾸렸거나 혹은 양육해야 할 아이를 낳았다면, 혹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우리의 삶에 찾아온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이라는 게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적잖이 두려웠으면서도,
다시 한 번 친구와의 동행을 결심했다.




살아 있는 걱정 인형이 되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던 학년 말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뒤, 나는 본가가 있는 포항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고등학교 친구와 짧은 여행을 했고(이 이야기는 다음에 제대로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열흘간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방학 중으로 미루어 둔 치과 치료를 받았다. 혹여나 미국에 가서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치료와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출국 준비를 하기 위해 설 연휴 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0년 전 미국에 들고 갔던 캐리어를 끌고서.

   나는 대체 공휴일에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명절에 이동할 필요가 없는 지인들을 잠깐잠깐 만나며 캐리어에 담아 갈 짐을 쌌다. 그 무렵 귀한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 준 지인들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걱정 인형'과도 같은 상태였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10년 만의 미국 재방문일 뿐만 아니라, 2015년 여름에 있었던 가족 여행 이후 비행기 자체를 처음 타 보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어떻게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는지, 다른 나라에 입국할 때에는 어떻게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자, 나 같은 (선택적) 계획형 인간은 하루하루 걱정 인형이 되어 갔다. 심지어 위탁 수하물로 부칠 캐리어의 무게가 기준보다 많이 나가지는 않을지 그것도 주요한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등 검색만 하면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쏟아졌지만, 실제로 내가 어떠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현실에서 해결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 '나'라는 사람은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행을 앞둔 자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그렇다고 아예 설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긴장과 초조로 뒤범벅되어 전장에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출국 준비를 하고 있자니, 여전히 나는 나다 싶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은 하늘을 날고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 역을 오르내릴 자신이 없어, 나는 집 근처(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네 정거장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를 타기로 했다. 설 연휴에도 정말로 공항버스가 운행되는지 업체에 확인 전화까지 해 놓고도 혹시나 공항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했던 나는, 조금씩 조금씩 출발 시간을 앞당겨 비행기 시간을 고려했을 때 꽤나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그날은 하필 전국에 극심한 한파가 몰아닥친 날이어서, 정류장에 앉아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기다리던 공항버스의 도착 예정 시간이 드디어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에 표시되고 남은 시간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어쩐지 싸한 기분에 등에 매고 있던 백팩을 확인해 보니, 지갑이 없는 게 아닌가! 그날 아침까지도 필요한 물건을 잊지 않고 챙겨 보려 지갑을 들고 동네 가게를 전전하다가, 정작 지갑을 두고 나온 것이다. 그 말은 곧 미국에서 쓰기 위해 새로 발급해 놓은 체크카드며, 미국 달러며, 무엇보다 공항버스를 타고 한국 내에서 사용해야 하는 교통카드 겸 체크카드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팽팽 굴리다가,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 나는 다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내가 예상한 위치에 지갑은 무사히 들어 있었고, 워낙 일찍 움직였던 덕분에 나는 동일한 버스 정류장에서 무사히 다음번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공항버스가 내가 서 있는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갈까 봐(이런 것도 염려하는 사람이 나다. 이 어찌 피곤하지 아니하겠는가!), 공항버스가 도착하기 5분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내 염려와 달리 공항버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버스 정류장 앞에 미끄러지듯 정차하였고, 기사님께서는 내 목적지를 물어보신 뒤(나는 1터미널로 가야 했다) 친절하게 내 캐리어를 직접 실어 주셨다.

   공항 버스에 탑승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쨌든 인천국제공항까지는 무사히 가겠다 싶어 걱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천까지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 공항버스는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도로를 달렸고, 그제야 긴장의 끈을 풀고 바깥으로 보이는 푸르른 풍경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문득 이번 여행이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살아 내다 보니 이런 선물 같은 시간도 오는구나 싶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몇 년 만에 북적이는 공항의 모습을 보았을 때도, 비행기에 탑승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던 순간에도,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대학교 4학년 때 떠났던 미국으로 다시 향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자유의 몸으로 만끽한 겨울은 한파에도 불구하고 마냥 춥지 않았다.

떠날 수 있는 자유의 온도는
참으로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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