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도 코스트코에 간다. 나도 간다. 코스트코는 뭐든 대용량으로 판다. 물건을 집에 쟁여 놓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와 코스트코는 상극처럼 보인다. 잔뜩 사다 넘치는 건 친정이나 이웃에 나눔 할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나와 j 두 식구만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코스트코에 간다.
미니멀에도 단계가 있다. 첫 시작은 ‘물성 있는 물건’이다. 눈에 보이는 건 강력한 동기부여가 돼 준다. 무너진 행거를 보고 마침내 각성 했다는 미니멀리스트를 우리는 얼마나 보았던가. 서른 가지 물건만 남겨두고 모두 다 없앴다는 기행이 여기 저기서 들린다. 그나 저나 물건이 서른 가지면 먹고, 씻고 이런 건 다 외주로 돌려 버리나. 집에선 그냥 잠만 자는 걸까.
물성 있는 물건에서 점차 인관 관계에도 의심이 생겨 난다. 이 관계들을 모두 유지해야 행복한 것일까? 개중 불필요한 만남은 없을까? 인간 관계도 여백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화려하고 빽빽한 꽃꽂이 보다 정성껏 키운 난 하나를 오래 들여다 보길 원하는 순간이 찾아 온다.
미니멀의 마지막 단계는 먹는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먹는지가 당신의 전부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매 끼는 원플레이트(접시 하나에 담긴 식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간소하게 먹되 영양가를 챙길 것. 매 끼니 이 사명감으로 음식을 준비한다.
코스트코 가서 사는 재료는 다섯 가지를 넘지 않는다. 대용량도 부담스러운데 갯수라도 줄일 수있어 다행이다. 부채살은 기름이 없다. 차돌박이나 꽃등심 부위만 선호하는 이들에게 부채살을 영 탐탁지 않다. 부채살은 흔히 다이어트 식단으로 많이 먹는 부위다. 스테이크로 구웠을 때 담백하면서 부드럽다. 느끼한 고기를 먹을 땐 소금 등의 시즈닝, 소스 등이 필요하지만 부채살을 올리브 오일에 구워 그냥 먹으면 된다. 코스트코에서는 부채살을 매우 저렴하게 덩어리째 판다. 집에 와서 300g씩 소분하는 게 일이지만 j와 나는 그 수고가 수고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양질의 가성비 좋은 소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냉동 척아이롤도 빠지면 서운하다. 얇게 샤브샤브용처럼 썰어 놓은 척아이롤 역시 소분해서 냉동고에 보관한다. 된장찌개, 설렁탕 또는 쌀국수가 먹고 싶을 때면 소분해 놓은 걸 하나씩 꺼내어 쓴다.
굳이 고기파냐 생선파냐 물으신다면 고기 먹을 땐 생선이 그립고 생선만 내리 먹으면 고기가 또 생각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둘 중 인내를 더 발휘하는 쪽은 언제나 생선이다. 그러니까 생선류를 일주일 내내 먹을 수 있다면 고기는 삼 일이 한계다. 이 정도면 생선파라 할 수 있을까? 코스트코에선 다양한 냉동 생선구이를 만날 수 있다. 고등어와 가자미가 대표적이다. 내가 아무리 생선을 좋아한다 해도 생물을 사다 먹기는 곤혹스럽다. 물컹한 생선 살과 끈적한 생선 국물은 나를 냉동의 세계로 유혹한다. 코스트코는 생선은 좋아하지만 생선 본연의 모습은 꺼려하는 나 같은 이들을 위해 손질된 냉동 생선류를 저렴하게 판다. 그 중 가자미는 양도 엄청 나지만 맛도 담백해 흰살 생선 좋아하는 분들에게 강추다. 기름 둘러 바삭하게 구워도 맛있지만 오븐구이로 해 먹어도 좋다.
사과식초, SB골든카레 등 오래 먹고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도 코스트코에서 구매한다.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나서 코스트코는 내 생활에 매우 유용한 장소가 되었다. 코스트코 한 켠에선 대용량으로 파는 과자, 초콜릿, 젤리, 베이커리 등이 진열돼 있다. 거길 당당히 뚫고 건강한 신선식품이 있는 곳에 도착하려면 카트를 끌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내 두 손에 담을 만큼만 필요한 것을 산다. 이것이 미니멀리스트가 코스트코의 유혹에 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