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day29
1.
전라도 백반 클라스만큼 다양한 수식어로 인생을 경험하길 바란다. 가짓수만큼이나 깊은 맛에 우열을 겨룰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접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야 할 최애가 있으리라. 아마 내 인생에서는 '젊은 암환자'라는 라벨이지 않을까 싶다. 내 삶에 가장 진하고 깊숙한 풍미를 만드리라.
2.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는 맛있고,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사건이 많다. 그 중 하나는 프랑스 국적 여자가 '34년 개띠'로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54년을 보낸 일이다. 콜렛 누아르(Colette Noir)는 스파이처럼, 레지스탕스처럼, 활동가처럼 한국을 경험하며, 떠나야 할 때는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았다. 여러 경험 중 #발굴전문가 소중한 기자(http://naver.me/xz3lQH8h)님은 5.18에 집중했다. 덕분에 40여년 전 광주 밖에서 진실을 보호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문헌 속에서 세상으로 발굴됐다.
3.
프랑스 여자가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 한다고 40년 후에 국회의원이 될 것도 아니고, 문화자본을 얻어 명망가가 될 것도 아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평범한 사람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론 단순한 이유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니까, 알려야 하니까, 그리고 자신을 도구라고 생각했으니까. 인간성을 무시하는 도구가 아니다. 결국에는 진실이 퍼져나가리라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하리라는 용기가 전제된 믿음이었다.
'젊은 암환자'로서 어떻게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하나, 고민을 이제 막 시작한 꼬꼬마로서는 아직 받아들이기 높은 수준이다. 이런 월클들을 모르고 살면 인생이 좀더 편할까 싶은데, #발굴전문가 기자님 덕에 어려울 것 같다.
4.
41년을 지나, 대한민국을 훌쩍 넘어선 마블급 스케일로 또다시 진실을 보호하고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미얀마 현지 기자 모임 #MPA(Myanmar Pressphoto Agency)의 현장 분석 기사가 펀딩과 함께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운명일까? 펀딩 시작 즈음 #발굴전문가에게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위에 소개한 #콜렛_누아르, #고_정양숙 님의 기사 <5.18 41주년 특별기획 - 두 여성의 5월>이 #5_18_언론상을 수상한 것이다. 상금은 무려 3백만 원!
5.
배우신 #발굴전문가로서 실천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소중한 기자는 상금은 미얀마 현지 기자 모임 MPA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미 시상식에서 내뱉어서 물릴 수 없다.
미얀마라니, 미얀마 기자들이니. 동반자로서 소중한 기자의 모든 선택을 존중했지만 이번엔 클라스가 달랐다.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나 역시 두 여성의 이야기에 큰 배움을 얻었기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여성의 5월> 기사 중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아래다. 콜렛뿐 아니라 정양숙님은 어느 하나의 사건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계속 나아갔던 사람이다.
"(발췌)정양숙의 삶은 이 사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녀는 1963년 가톨릭노동청년회(JOC)에 가입하고 1965부터 3년 동안 JOC의 전국회장을 맡으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여러 공장에 취직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1968년엔 국제가톨릭여자협조회(AFI, 현 국제가톨릭형제회)에 들어가 명동성당과 전진상교육관을 오가며 민주화운동에도 힘썼다. 역시 AFI 회원으로 1962년부터 한국에 있었던 콜렛과도 이때 인연을 맺었다.
정양숙은 유럽 유학 중엔 벨기에에 머무르면서도 수시로 독일을 찾아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돕기도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선 1979~1983년까진 명동성당에 위치한 노동문제상담소에서 간사로 활동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쓰러지기 전까진 환경운동에 관심을 두고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정양숙과 엄혹했지만 뜨거웠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콜렛은 이렇게 말했다...
(전체 기사 : http://omn.kr/1t9pv )
6.
누군가의 내장 깊숙한 곳에 새겨진 뜨거운 사건을, 내가 원샷할 순 없다. 그랬다간 항암 약물에 공격받아 너덜해진 소화점막들이 그대로 녹아버릴 것이다. 그저 좋아요, 공유, 몇 천원 기부로 함께 지켜볼 뿐이다. 믿을 뿐이다.
진실이 결국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 것이며
그 과정에 함께하는 우리를 좀더 고귀하게 만들 것임을.
41년 전 프랑스 여자 콜렛과 한국 여자 정양숙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