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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Aug 16. 2023

접근성 석고대죄

[Accessibility 1] 차별적 언어를 부수고, 모두의 UX로

자, 여기 돗자리를 깔았으니 같이 앉읍시다.


여러분은 새로 서비스나 기능을 배포할 때 접근성 텍스트를 잘 챙기시나요? 

서비스 처음 릴리스할 때 같이 챙겨서 나간다고 하시는 분이라면... 존경합니다 선생님. 

혹시 '접근성 텍스트가... 뭔가요?' 또는 '아니, 바빠 죽겠는데 그걸 어떻게 챙겨요' 하시는 분 있으시면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석고대죄하려고 돗자리 미리 펴놨습니다. 

어딜 가세요, 같이 앉으셔야 합니다.


접근성 제대로 안 하시는 분, 이쪽으로 앉으세요. 언니, 거기 자리 좀 내주세요.


오늘은 그동안 부채감을 갖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서 작업해야 할 업무, UX 디자이너와 UX 라이터의 아픈 손가락, 접근성 텍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글은 2번으로 나눠서 게시됩니다.  


UX 라이터의 중요한 업무, 접근성 텍스트 쓰기


접근성 텍스트(Accessibility text)는 시각적 콘텐츠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는 음성용 텍스트입니다.  이미지, 버튼, 링크 UI 컴포넌트 기타 상호작용 요소에 추가된 보이지 않는 텍스트, 즉 발화를 목적으로 하는 텍스트이죠. 주로 시각 장애를 가진 사용자들을 위해 제공되는 접근성 기능 중 하나로 아래 경로에서 바로 사용해 보실 수 있습니다.


iOS는 설정 > 손쉬운 사용 > VoiceOver
안드로이드는 설정 > 접근성 > Talkback (갤럭시 기준)


iOS와 Android에서 기능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화면에 있는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의 일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텍스트, 버튼, 아이콘 등을 읽어주어서 시각 장애를 가진 사용자가 인터페이스를 탐색하고 서비스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인 거죠.  

UX  라이터가 있는 회사에서는 라이터가 이 텍스트를 작성하고, 없는 회사에선 UX 디자이너가 씁니다. 각  OS 별 발화룰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개발팀과 상의를 해가면서 써야합니다. 기본적으로 접근성 텍스트는 합성된 음성으로 발화되며, 사용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읽는 속도, 목소리 등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어, 아직 한 번도 안 써보셨다고요? 그럼 지금 써 보세요. (갑작스러운 강권)

해당 기능을 켜고 눈을 감고 화면을 눌러보면서 소리로 안내를 받아 원하는 과업을 수행해 보십시오. 생각보다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이때 중요한 건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스크린 리더를 끄는 법을 확실히 숙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비장애인이 처음 써보면 익숙지 않아 조작이 쉽지 않고, 끄는 방법을 몰라 허둥지둥하게 될 거니까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접근성 텍스트를 썼지만 아직도 제스처를 제대로 못 외워서 테스트 끝내고 빨리 못 끄고 어버버대는 사람. 그래서 사무실 전체에 "뒤로! 뒤로! 한, 개의 항목, 설정! 홈! 설정! 홈!" 울려 퍼지게 하는 사람. 네, 그게 접니다. (접근성 테스트할 때는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이어폰을 끼고 합시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니까 써보기 두려우실 수 있는데(...) 

그럼 이 동영상을 한 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Accessibility label에 대한 동영상입니다. 시각 장애인인 애플의 QA 엔지니어가 직접 접근성 텍스트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설명해 줘서 울림이 더 큽니다. 

짧고 유익하고 재미있으니까 다 보세요. (반복되는 강권)




차별적인 언어를 때려 부수고


접근성 텍스트를 쓸 때 비장애인 UX 라이터의 고민은 커집니다. 접근성은 항상 제게 You are not your user의 원칙을 곱씹게 하는 영역이거든요. 모든 UX 직군을 쭈굴쭈굴하게 하는 바로 그 명제요.


당신은 당신의 사용자가 아니잖아요? 
당신이 뭘 정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넘겨짚지도, 단언하지도, 확신하지도 마세요.


문제는 접근성을 다룰 때 이 You are not your user라는 명제는 허위성 합의 효과(The False-Consensus Effect)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나는 경험해 본 적이 1도 없구나...!'라는 수준의 자각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현재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경험을,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해서 텍스트를 쓸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매일 스크린 리더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스크린 리더의 빠른 읽기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당연히 음성 발화되는 접근성 텍스트로 UI를 100% 조작하지도 못합니다. 

비장애인 사용자의 서비스 이용 경험과 장애인 사용자의 경험은 정말 다르다는 걸 저는 접근성 텍스트를 쓸 때마다 느낍니다. 그래서 장애에 대해 언급해야 할 때, 장애를 가진 사용자를 위해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쓸 때에는 한층 더 겸허한 마음으로 예민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먼저 차별적인 언어를 지양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텍스트를 작성할 때에는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아니다, 정정할게요. 살면서 누구에게도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마세요.

이건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지만,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굳이 설명을 하겠습니다.


차별적인 명칭으로 장애인을 부르지 마세요.

병신, 귀머거리, 벙어리, 미친놈(정신질환이 있는 사람), 봉사, 장님 등의 비하가 담긴 표현 금지입니다. 그런 표현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특정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인용되는 것(과거 기록, 문학 작품 등에서의 인용)과 당신이 그것을 일상적으로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생활이든, UI 텍스트이든 차별적인 언어는 사용하지 마세요.


장애를 비정상인 것으로 상정하거나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남다른 존재로 묘사하지 마세요.

장애를 헤쳐 나가고 있다, 장애와 싸우고 있다, 장애에 고통받고 있다와 같은 표현도 지양합니다. 누가 감히 남의 삶을 고통으로 규정하고 묘사하나요. 건방지게. 반대로 장애인을 고통을 이겨내는 숭고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도 굳이 묘사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높임과 영웅화는 되려 차별을 강조합니다. 장애인의 삶과 생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세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우선 사용하세요. 

관용구에는 오래된 사회적 편견이 뻔뻔하게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님 코끼리 코 만지듯', '벙어리 냉가슴'같은 표현을 UI 텍스트에 쓸 일은 없겠지만, '사장님이 미쳤어요!' '눈먼 세일', '바보도 알아볼 혜택' 같은 표현도 장애인과 그 주변인들에게 불편할 수 있죠. 

'A 버튼을 터치하면 화면에서 반짝이는 B 아이콘을 볼 수 있어요'. 'A 버튼을 누르면 경고 사운드를 1회 듣게 됩니다'와 같은 표현도 장애인 사용자에게는 편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A 버튼을 터치하면 화면에 B가 반짝거리며 표시됩니다', 'A 버튼을 누르면 경고 사운드가 1회 재생됩니다.'와 같이 정보의 질적, 양적 차이는 없으면서도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그걸 우선 사용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뜻밖의 UX 리서치: 장수건강안마센터에서 와식(臥式) 인터뷰


위에서 밝힌 차별적이지 않은 표현 방식 중에서 제가 가장 어려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명제는 사실 세 번째입니다. 이 부분은 다른 시니어 라이터들도 상당히 어려워합니다. 왜냐면 모바일 UI 텍스트를 쓰다 보면 '보고, 듣고, 터치하는' 제스처를 지시하거나 가이드해야 할 때가 정말 많은데, 그 모든 케이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표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비장애인 사용자의 수가 장애인 사용자보다 많고, 실제 디자인이나 설계가 모두 비장애인 중심으로 작성되었을 때,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케이스에서 UX 라이터는 과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볼게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합류했을 때 놀랐던 것 하나가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텍스트 가이드라인에 조금은 독특한 룰이 있다는 것이었죠. 그건 바로 ‘보다(See)’라는 동사를 접근성 텍스트에서 쓸 때에는 모두 ‘확인하다’, ‘알아보다’와 같은 다른 동사로 일괄 대체해서 새로 작성해야 한다는 룰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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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회사에서 Android 휴대폰 Talkback 텍스트를 많이 작성해 본 경험이 있던 저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접근성 문구는 화면에 표시되는 것과 동일하게 작성해야 한다, 비장애인의 시각 경험과 다르지 않도록 시각 장애인에게 완전히 같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 하에서 Talkback 텍스트를 써 왔었거든요. 실제로 화면에 표시되는 텍스트는 Talkback이 그대로 읽어줍니다. 거기에 '보다'라는 단어가 쓰여있다면, 스크린 리더는 그걸 그냥 읽어줍니다. 존재하는 정보를 말 그대도 가공 없이 '전달'하는 거죠.


지금은 제 베프인 당시의 UX 라이터 동료분께 왜 이런 가이드라인이 생겼는지 물어봤는데, 그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본인의 대학원 동기 중에 시각 장애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접근성 문구를 현지화를 할 때 See more, You can see~와 같은 문구를 무조건 ‘볼 수 있다, 볼 수 있어요, 보세요’로만 번역하면, 그 텍스트를 듣는 자기 같은 사람은 조금 서운할 것 같다고 했다는 겁니다. 

시각장애인인 자신은 볼 수 없는데 자꾸 ‘볼 수 있어요, 보세요’라고 하니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이런 규칙이 생겼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마음이 남아있었습니다. 

정말 저시력자나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이 이런 표현 가공/변경을 원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너무 멀리 나간 건 아닐까? 

왜 실제를 왜곡하냐며 그런 배려가 외려 차별적이라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까? 

시각 장애인은 눈이나 보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접근성을 위해 이 용어들은 모두 배제해야 하는 것일까?


동료분께 설명을 충분히 들었고, 납득할만한 스토리였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서비스의 포용성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제가 추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모르는 영역이었기에, 저는 그 가이드라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일단 룰에 따라서 접근성 텍스트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목이 안 돌아가더라고요. 옆을 보려면 몸을 통째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병원에 가기 전에 먼저 지인분께 소개받은 장수건강안마센터로 안마를 받으러 가봤습니다. 

그곳엔 경력 30년 국가공인 안마사 원장님이 계셨어요.

일단 그분께 목과 어깨 맡기고 하염없이 앓는 소리를 하며 늘어져 있었는데... 불현듯 시각장애인이신 원장님께 그걸 여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석에서 와식(式) 사용자 조사가 진행된 거죠. 

사용자 조사가 뭐 별 겁니까. 내가 궁금하면 하는 거고 틈만 나면 하는 거죠. 물론 제가 구비문학과 UX 정성 리서치 전공자로서 현장 조사, 채록, 1:1 In-depth Interview 같은 걸 꽤 해봤지만... 

누워서 뒷목 잡힌 채 인터뷰한 한 건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국내 유일 인터뷰이에게 뒷목 잡힌 인터뷰어. 사진은 장수건강안마센터 리뷰에서 퍼온 것이며 저 아닙니다


아무튼, 엄청난 기교로 경직된 제 뒷목을 꾹꾹 눌러 주시는 원장님을 앞도 아닌 뒤에(..) 모시고 차근차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뭐 하는 사람인데, 선생님은 휴대폰은 뭐 쓰시냐, 언제부터 그 회사 제품을 쓰셨냐, 얼마나 자주 기종을 바꾸시냐, 주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시느냐, 앱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떻게 되시냐, 서비스 정보는 어떻게 얻으시냐, 평소에 휴대폰을 쓰시는 시간은 어느 정도냐 등 사용자 배경에 대해 청취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 회사에 이런 접근성 규칙이 있다, 보통 휴대폰에서는 이렇게 발화되지 않냐 등을 질문 배경도 설명드린 후, 혹시 화면에 표시된 그대로 비장애인과 동일한 텍스트를 듣는 게 나은지, 아니면 '보다'를 다른 말로 바꿔서 듣는 게 좋은지를 여쭤봤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인터뷰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설명을 드리는 중간중간에 진짜 너무 아파서 "아... 선생님은 갤럭시 쓰시는구나... 아아악! 아니 선생님 거기는 너무 아픈데요.. 헉헉... 그럼 혹시 지금 쓰시는 기종은 뭔가, 아아악!! 거기 거기 거기는 진짜 엄청 아파요!" 이랬습니다. 

여하튼,  저의 남다른 인터뷰 진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설명을 듣고 성실히 답해주시던 원장님께서는, 접근성 텍스트를 가공하는 것에 대한 제 질문에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 


"글쎄... 나는 말이야..."







절단 신공. 오늘은 여기까지 : )



오늘의 퀴즈

장수건강안마센터 원장님은 접근성 텍스트를 가공 여부에 대한 제 질문에 과연 뭐라고 답하셨을까요? 

댓글로 원장님의 답변, 또는 그렇게 답변하신 이유를 최대한 비슷하게 적어주신 한 분께 제 책을 한 권 보내드리겠습니다원하시면 저자 사인도 해드리고, 고양이도 그려드릴게요. 

책 필요 없고 그냥 답만 맞추고만 싶은 분도 댓글 달아주세요. 

퀴즈 정답은 다음 글 [Accessibility 2]에서 공개됩니다. 그전까지만 댓글로 맞춰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무도 안 적어주셔도 원망하진 않을게요.

 

그나저나 제 책 판매는...

감사하게도 제 책은 꾸준히 나가고 있습니다. 

주변 분들이 많이 홍보해 주시고 사주셔서 ㅠㅠ 감격의 2쇄! 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렇게 UX 라이팅에 관심이 많으셨구나 싶기도 하고, 조선의 늙은 UX 라이터의 첫 책을 뭘 믿고 사주셨나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UX, 기획, 디자인, 개발 업무를 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마케팅, 브랜딩 하시는 분들께도 좋은 평을 받고 공감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더 기뻤습니다. 글쓰기로 대동단결한 느낌!(가즈아!)

회사에서 대고객 글 쓰시는 분들께는 도움이 될 책이니까, 관련된 일 하시는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튼소리는 안 썼다니까요.

암튼 앞으로도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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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섹션에서 개발 서적 사이에서 쭈굴쭈굴 끼어 있는 제 책. 그래도 '규칙으로 배우는 임베디드 시스템'보다는 제 책이 재미는 더 있을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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