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빈 건널목 차단봉 문구]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닭갈비를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지금은 유명 맛집이 된 오근내 닭갈비가 아직 그렇게까지는 유명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본점만 있었던 그때 처음 그 집을 찾아가던 길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꽤 오래전 일이다. 날이 무척 더웠고 우리는 오래된 단층 주택들이 모여있는 용산대로 뒤편 이촌동 골목길을 차로 이리저리 떠돌았다. 넓지 않은 도로에서 맞은편으로 오는 차를 조심하며 '주인장은 왜 이런 곳에 닭갈비집을 열였을까' 생각하던 차였다.
당시 용산은 내게 오묘한 곳이었다. 상도동 집에서 504번이나 152번을 타면 노들섬을 지나 한강대로에 진입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길 오른편으로는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퍼런 강을 내려다보는 트럼프 월드의 위용에 주눅이 들었다가도 곧 오래된 건물의 낡은 간판을 보며 마음을 놓곤 했다. 그곳엔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도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앞을 지나며 나가고 싶어 했던 사람들과 그들을 나가지 못하게 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여전히 용산은 새로운 시간과 오래된 시간이 대치하고 있는 공간이다. 밀물과 바닷물이 밀고 밀리다가 결국엔 섞여버리고 마는 강하구처럼 용산은 혼탁하다. 나가려는 힘과 들이지 않으려는 힘이 서로 노려보고 있다. 누가 누구를 밀고 있는지, 누가 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날 나는 골목 사이사이를 서행하는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서 닭갈비에 넣을 사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떡? 고구마? 아니, 역시 우동인가. 볶음밥을 생각하면 초반부에 탄수화물 사리는 자제해야 할까, 하지만 오늘은 탄수화물 폭탄을 먹고 싶은걸' 뭐, 그런 시답잖은, 그러나 또 나름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일행과 상의 없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닭갈비처럼 같이 먹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에도 늘 혼자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나였다.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차 앞에 철길 차단봉이 내려져 있었다. 닭갈비집까지 가려면 철도 건널목을 건너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철길이 있구나. 하긴 용산역이 멀지 않지.
우리 차 앞에서 신호가 걸린 모양이다. 맞은편에서 오던 차들도 반대편 차단봉 뒤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닭갈비도, 탄수화물 사리 시리즈도 잠시 지연된다. 나는 무료한 눈으로 우리 차 앞으로 내려진 붉고 선명한 글씨를 읽었다.
정지 STOP
그리고 이내 눈을 들어 저 멀리 맞은편 차단봉에 적힌 문구도 읽었다.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였다. 당시 나는 주니어 라이터였고 특정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제시해야 하는 메시지는 오직 그 사람에게만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저 메시지가 내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시 보니 저 아홉 글자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단봉 바깥에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차단봉 사이에 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곧 기차가 올 테니 혹여 차단봉 사이에 갇혔다면 그대로 부수고 나가라는 갈급한 안내.
당시에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살면서 어디에든 갇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망설이고 돌아섰다가 또 망설이며 한 걸음을 내딛기를 주저하며 살아왔다. 아주 가벼운 관계도 나를 가둘까 봐 나는 언제나 두려워했다. 충분히 고민해서 돌아서고 또 돌아오기를 반복하였으니, 나의 조심성은 그 누구도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견고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갇혀버리는 일은 언제든지 일어나기 마련이다. 차단봉이 내려가기 직전, 박자가 맞지 않아서, 또는 충분히 나갈 수 있고 종내에는 내가 어찌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결국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예측력이란 하찮기 그지없는 것이라 나이를 먹으면서도 좀처럼 성장하지 않는다. 고통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찾아오는 데 비해 내 어린 예상은 언제나 자라지 않고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별 없이 나를 덮치는 위기도 무섭지만, 원래 벽이 아니었던 것이 나를 묶어두는 순간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사랑하던 것이 벽으로 돌변하여 우리를 가두었던 일을 나도 당신도 겪어보지 않았는가.
돌파(突破)는 구어에서는 자주 쓰지 않는 어휘다. 소년 챔프 풍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이 단어는 멋들어지기는 하나 정작 하기는 어려운 어떤 것을 묘사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라! 정면 돌파하라!'와 같은 응원은 허공으로 솟았다가 이내 헛되이 흩어지곤 한다. 무엇을 부수란 말인가. 부술 수는 있는가? 그러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면 그때는 어쩌란 말인가. 그 시절 나는 타인의 상처를 두려워했다. 강박적으로 상처줄까봐 무서워했고 상대에게 그런 일을 하느니 차라리 나의 소멸을 택하겠노라 말하곤 했었다. 구명보트에서 누군가 내려야 할 때 서로 눈치를 보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질 1번 인물이 나일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돌아다녔다. 상대를 망가트릴까 봐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고통의 해일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그날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라는 낡은 안내 팻말을 읽으며 나는 드물게 파괴 의지를 느꼈다. 갈급한 순간에 처한 사람에게 보내는 안내임에도 느낌표 하나조차 없었으나, 내게는 강렬한 생의 계시처럼 느꼈다. 망설일 수도 없고, 망설여서도 안 된다. 나는 여기서 나가야 하고 그러려면 부숴야 한다. 부수면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다. 나도 상대도 아프게 될 것이다. 때로는 한쪽이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대로 내가 사라지는 결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살아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번이고 돌파를 되뇌었다. 곧이어 기차가 느리게 지나갔고 차단봉도 다시 올라가 우리는 곧 가까운 오근내 닭갈비에 도착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서 탄수화물 사리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가 들어와 앉았다. 밥을 잘 먹고 좁은 방에 돌아와 누웠다. 오래도록 돌파를 생각했었다.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여러 번 갇혔었고, 여러 번 돌파하였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부수고 나가리라 생각한다.
그 사이 나는 아저씨라는 아름다운 드라마가 방영되었고, 이지안과 박동훈이라는 돌파자들이 이 백빈 건널목 앞에 선 그림을 TV로 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와 이 건널목, 이 문구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나는 여러 번 그들이 건널목을 지나는 장면을 돌려보곤 했다.
긴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메시지는 그 어떤 문구보다 직관적이어야 한다. 메시지를 보는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으므로, 당황한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코레일 부경본부에서 '갇혔으면 돌파하세요'를 '갇히면 이 차단봉을 뚫고 나가세요'라고 개선하였다고 한다. 개선의 필요에는 공감하나 표현을 조금 더 수정해 볼 여지가 있다.
불확실하거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가정하여 말할 때 쓰는 연결 어미를 쓴 '갇히면'보다는, 이미 발생한 상황을 조건절로 언급하는 '갇혔다면'을 쓰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럽다. 실제 갇혀있는 사람을 위한 메시지이니까 말이다. 이런 안내 문구에는 간결성 보다, 명확성이 훨씬 중요하다. 원안의 '갇혔을 때'는 다소 상황을 멀리 바라보는 인상이다.
지시사 '이'를 넣은 목적어 '이 차단봉을' 쓴 것은 좋다. 무엇을 부숴야 할지를 정확하게 지칭하는 것이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된다. '이 봉을'이라고 줄여 표현해도 좋다.
'뚫고 나간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동사를 쓰는 것이 좋겠다. 차단봉은 길고 얇으므로 '뚫다'라는 용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상과 용언이 어울려야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 사용자가 이 상황을 돌파했을 때 봉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부수고' 또는 '밀고'가 낫겠다.
기존안: 갇혔을 때 돌파 하세요
현재안: 갇히면 이 차단봉을 뚫고 나가세요
개선안: 갇혔다면 이 봉을 부수고 나가세요, 갇혔다면 이 봉을 밀고 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