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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Sep 27. 2023

북토크, 잡지 인터뷰, 책 출간 회고 etc.

[잡담] 이제 제 주말은 제 겁니다. 

1.

책 출간 후 딱히 뭔가를 하진 않았습니다.

출판사 담당 마케터님께서 UX 라이터 커뮤니티와 뉴스레터에 도서 이벤트도 진행해 주셨지만, 저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라 저자로서 별다른 홍보 활동은 안 했습니다. 이렇게 저자가 아무것도 안 하는 책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마케터님께 죄송하지만 어쩌겠어요. 저는 자주 얼굴이 빨개지고, 자기 이야기를 할라치면 부끄러워서 아무 말 소잔치를 하기 일쑤인 극 내향형 인간인 걸요.


2. 

그래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서 북토크를 했습니다. 

어째서 빨리 마감이 되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목요일 저녁 최인아 책방 GFC점에서 독자분들을 만났습니다. 퇴근 후 귀한 시간과 2만 원의 참가비를 써주신 분들께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작년 매주 주말에 갔던 그곳, 공평동 '결'에 가서 북토크 장표 준비를 했습니다.


종로구 공평동에 있는 빈브라더스의 커피 전문점 '결'.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메뉴입니다.


작년 한 해 거의 매주 한 번, 또는 두 번 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썼어요. 매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메뉴를 먹으며 글을 쓰고 고치고 했습니다. 책 나오면 다시 안 올 것 같았는데, 책을 쓰고 나서 그 자리에 돌아와 앉아 북토크 준비를 하다니... 

전생에 공평동 지박령이었을까요 전.


아, 북토크가 어땠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일단 제게는 큰 의미와 힘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업계 분들을 많이 만났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UX 라이팅 전문 뉴스레터 캡처 프레이즈 팀에서 오셔서 후기도 실어주셨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살짝 보세요. : )


 3. 

그리고 매거진 톱클래스와 인터뷰도 했습니다. 

톱클래스는 18년이나 된 저력 있는 인터뷰 매거진인데, 주로 출간 작가분들 중심으로 밀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매달 특별한 스페셜 이슈를 정해 관련된 작가들을 인터뷰하는데 이번 10월호 주제가 '읽히는 글쓰기'거든요. 그 스페셜 이슈의 한 꼭지로 UX 라이터와 UX 라이팅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늘 기사가 나왔는데 담당 기자님께서 되게 잘 써주셔서 쑥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러네요.

물론 저의 낯짝이 나와서 부끄러워 미쳐버릴 지경이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읽어봐 주세요. 인터뷰 전문 매거진이라서 UX 라이팅에 대한 꽤 묵직한 이야기를 깊게 나눴습니다.



4.

책을 내고 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책을 내기 전에는 UX 라이터, 디자이너, 기획자 분들이 책을 읽어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개발자분들이 많이 읽고 공감해 주셨어요. 또 주니어 라이터나 라이터로 전직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 학생 분들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나 잘 이해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아니, 이렇게 찰떡같이 다 이해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잘 알아주셔서 저자로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업 라이터분들이 힘이 난다고,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그동안 일하면서 혼자 외롭고 힘들었는데(흑흑) 책을 읽으면서 이해받고 위로받았다고 메시지로, 메일로, 대면으로 따뜻한 인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어서 그런 마음을 받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고마운 건 난데 왜 나한테 고맙다고 해요... 엉엉 (얼싸안고 운다)


5. 

몇 분이 이 책은 도덕책 같다, 책에서 무거운 사명감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알아요. 입바른 소리를 책에 꽤 썼죠. 

정말 이 올곧음과 원칙을 실무에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저는 '아마 되게 어려울 걸요'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무슨 말간 콧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는 남산골샌님 딸깍발이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모든 텍스트를 순혈, 순정 사용자 중심적으로 쓰겠어요. 이 풍진 IT 판에서 밥 굶기 딱 좋죠. 

저도 자주 지표와 라이팅 원칙, 윤리 사이에서 애타는 줄타기를 하는걸요. 저라고 뭐 별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한 번 씨게(?) 이쪽을 꾹 하고 다져놓으면, 실무를 할 때 자본과 비즈니즈 이익 논리랑 섞여서 그래도 어느 정도 간이 맞는(?) UX 라이팅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혹여 책에 나온 대로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작업물을 뽑아내지 못했다고, 너무 찝찝해하거나 자책하지 마시길 바라요. 밥벌이는 고귀한 것이고, 우리는 회사 돈을 받고 제품에 넣을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래 원칙은 이거지, 원래 정도(正道)는 그거였지... 근데 이번엔 이런 사정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다음엔 좀 더 나아가보자'라는 마음이면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좋은 걸 써보려는 것만으로 저는 정말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6. 

이제 제 주말은 제 겁니다.

이제 공평동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주말엔 숲이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어요. 

브런치에 글은 계속 쓸게요. 사실 책을 통해 UX 라이팅의 원칙과 굵직한 부분에 대해 원하는 만큼 썼습니다. 제 경험과 지식의 가장 무거운 부분 1/5 정도를 잘 뭉쳐서 덜어낸 느낌이에요. 나머지 4/5는 케이스 중심의 실무 지식입니다. 알면 좋고 몰라도 큰 문제는 없는 것들이죠. 책에 담은 내용에서 모세혈관처럼 파생되어 나온 소소한 작성 팁, 스킬, 업계 트렌드에 따라 변천되어 온 표현법에 대한 것들도 있습니다. 

혹시 UX 라이팅 관련해서 제가 써줬으면 하는 주제가 있거나, 일하다가 문득 궁금해진 게 있다면 메일이나 댓글로 말씀해 주세요. 아는 건 그냥 쓰고, 모르는 건 대신 알아보고 알려드릴게요. 같이 고민하다 보면 뭐든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남은 접근성 2편부터 마무리해야겠습니다. 

 

7. 

이제 정말 끝났습니다. 책 출간이라는 긴 프로젝트의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 지으면 좋을까요.

그냥 저 위 톱클래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을 붙여 넣으면서 끝낼까요. 

역시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제 마음이니까요.


UX 라이터로 10여 년간 활동해 왔습니다. 여러 감회가 들 것 같아요.


“기술과 서비스의 변화로 사용자들이 쓰는 언어가 변화하는 걸 바라보면서 큰 재미를 느꼈어요. 흥했던 기술, 상품, 서비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서비스가 부각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휘도 떠올랐다 가라앉죠. 물론 언제나 재미있지만은 않아요. 전문가로서 언어의 숨은 힘을 잘 쓰는 서비스와 흑마술처럼 잘못 쓰는 서비스(다크 패턴)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새로운 시대의 글쓰기가 완전히 정의되지 않았다 보니 사용자를 향한 글쓰기 원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 단단한 선언 위에서 다른 UX 라이터들이 힘을 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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