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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Jan 05. 2016

상상 고양이

썸day 열번째 날

동명의 드라마 리뷰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아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몰고 온 짝사랑의 열병에 대한 기록이다.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허나 매혹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머릿속을 며칠째 맴돌고 있는 그 녀석. 


상상 고양이.


벌써 수차례다, 녀석을 찾아간 게. 성모상을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성당 마당을 서너 바퀴 둘러봤다. 하지만 녀석은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다는 듯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것일까. 보라매공원을 거닐며, 왜 녀석이 내 마음을 이리 잡아끄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 봤다. 답은 겨울 추위를 피해 숨어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주황색 얼룩무늬인데, 코가 고운 연분홍이야!” 여자 친구의 눈빛은 솜사탕을 만난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뼛속까지 ‘강아지파’인 그녀가 고양이를 보고 이토록 흥분했다니, 의외였다. 어머니와 함께 새해맞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찾은 성당에서 녀석을 만났다고 했다. 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른다고, 그 애가 또 보고 싶어 미사도 드리는 둥 마는 둥 했다고. 하도 울기에 참치 캔 하나 따서 녀석 앞에 놔두고 왔단다. “자기가 봤으면 키운다고 했을 걸?”하며 배시시 웃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날, 여자 친구와 점심을 먹고 성당을 찾았다. 그녀가 그토록 마음에 들었다니 한 번쯤은 봐두고 싶었다. 그런데 없었다. “없네. 가자.” 무심한 듯 돌아섰지만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흔히 듣던 ‘냐옹’ 소리가 녀석의 목소리인가 싶어, 아닌 걸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소리 나는 곳을 돌아봤다. 역시나 아니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칠 법도 하련만, 녀석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자 천장에 녀석이 그려졌고, 눈을 감자 눈꺼풀을 스크린 삼아 녀석이 상영됐다. 스친 적조차 없으니 그 실루엣은 오로지 공상에 의한 것일 터. 허나 녀석은 마음 안에서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반드시 만나야 할 인연인 것처럼.     




신비로움을 간직한 눈망울이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한쪽 얼굴은 하얀색 털로 뒤덮여 있고, 반대쪽 얼굴은 주황 얼룩무늬가 차지하고 있다. 콧망울은 언제까지고 만지고픈 말랑말랑 핑크색이다. 기분이 좋은지 ‘갸르릉’ 낮은 울음을 내며 서서히 다가오는 녀석. 한 발 한 발 내 쪽으로 내딛을 때마다 녀석의 등허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그렇게 한껏 다가서더니, 경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발톱 온전히 집어넣은 두 앞발로 허벅지를 연신 꾹꾹 누른다. 온몸으로 내뿜는 사랑스러움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지만, 이내 그만두고 녀석이 하는 양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본다. 몰입이 빚어낸 꿈임을 알기에.     




‘너 진짜 해괴한 짓거리한다.’고 자책하면서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하루 한 번 성당을 찾았다. 오늘까지 네 번째 방문이다. 여전히 텅 빈 마당. 녀석은 좀처럼 제 형상을 보여주기를 꺼린다. 적을 옮긴 것일까, 사람이 싫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을 그저 상상의 영역으로 남기고 싶은 것일까. 어떤 이유인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어쨌든 녀석은 얄궂기 그지없다.


실체조차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느끼는 기묘한 그리움. 생애 처음 느끼는, 낯설지만 그다지 싫지만은 않은 감정선을 힘껏 부여잡고, 내일도 성당으로 향할 것 같다. 심장박동이 그곳을 향해 뜀박질하는 한, 녀석은 생생히 실존한다. 


상상 고양이는 기분 좋은 모습으로,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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