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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Jul 30. 2017

운전

썸day 열아홉 번째 날


                                                                                                                                                                      

“안 피곤해?” 동생이 미안한 기색으로 물어왔다. 오전 취재를 마치자마자 녀석을 녀석 모교로 데려다주는 길. 피곤한 게 당연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운전하는 거 엄청 좋아한다니까.” 그 말에 괜히 부아가 나서 정색하며 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녀석, 무안했는지 차창 너머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아니면 말고.” 어리게만 보였던 녀석이 어느새 방송국에 입사해 제 앞가림을 하는 것도 모자라 학교에 특강까지 간다고 하니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흔쾌하게 편도 한 시간 반 거리를 운전하겠다고 자진했다. 아니, 자진한 것도 있다. 더 큰 다른 이유를 품었단 말이다. 아까의 부아는 사실 녀석이 괘씸해서 낸 게 아니었다.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따기 한참 전부터, 나는 내가 운전을 좋아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열 살 무렵 외가에 갔다가 부모님 몰래 차를 끌고 겁도 없이 시골 논두렁을 누비고 다녔을 정도니 말 다했다. 다행히 들켜서 된통 혼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꼬맹이의 무면허 운전으로 아홉 시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후 면허를 딸 때까지 운전대를 잡은 적은 없지만, 그 욕망만큼은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놀이동산 소풍 때 하루 종일 범퍼카를 탄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노는 것에 빠져 스물여섯 조금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딴 직후, 밤 열 시에 피곤하다는 엄마를 조수석에 앉히고는 십만 킬로 탄 쥐색 아반떼로 수원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이후 기회만 닿으면 어떻게든 운전대를 잡으려 노력했다. 물론 그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아마도 꽤나 많이 들통났을 게다. 운전석에 앉으면 콧노래부터 불러댔으니. 비록 차는 없었지만 그렇게 틈틈이 수련한 덕분인지 지금까지 가벼운 접촉사고를 한 번 냈을 뿐, 별다른 사건 없이 운전을 즐기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운전하기를 즐긴다는 것을 비교적 최근에서야 자각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올해 초 자그마한 차를 장만한 게 스모킹 건으로 작용한 것 같다. 서울에서 오산으로 적을 옮겼고, 그러다 보니 원활하게 일하려면 차가 필요했고, 경제성을 우선시했기에 망설임 없이 경차를 선택했는데, 천만 원 조금 넘는 차를 운전하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느냐는 말이다. 그렇다고 엑셀 세게 밟기를 즐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범 운전자에 가까울 정도로 얌전하게 운전한다. 그런데 그게 행복하다. 일과 일 사이의 운전은 당연히 피곤하건만, 내심 기쁘기 그지없다.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시동을 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구나!’ 드디어 깨닫고야 말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근원적인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왜 운전을 좋아하지? 며칠 전 충주 수안보로 가족 여행을 다녀오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니, 어느 정도 답에 근접한 것 같다. 아무래도 뿌리 깊은 피해 의식으로부터 출발한 삶의 궤적 때문이지 싶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물여섯 이전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격렬하게 부정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나는 싫다. 필요 이상으로 엄했던 아버지와 차마 밝히기 힘든 집안 사정이 주요 원인이라고 자위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라는 놈 자체가 별로였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좋아하던 글쓰기를 아버지의 “그거 하면 굶어 죽어.” 한마디에 너무나도 가볍게 접어 버렸던 나. 간절했다면 반항했어야 했고 쟁취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에 비겁하게 아버지 핑계, 집안 이유를 드는 것일 뿐. 


참 희한하게도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는 나를 극적으로 변화시켰고, 그 이후로 ‘죽든 살든 내 인생’이라는 신념 하나로 육 년을 살아왔다. 사실 죽을까 봐 엄청나게 겁났는데, 막상 뛰어들고 보니 내 나름대로의 수영법이 있더라. 어떤 선택을 하건 최소한 죽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건 글 쓰며 꿋꿋이 버텼다. 아니, 이삼 년 전부터는 살 만하더라. 이게 내 삶이지 싶더라. 어느새 경차 한 대 무리 없이 일시불 결제하고 어디든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준은 돼 있더라. 


아마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이리라. 스스로 핸들을 돌리고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언제든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나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점들이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렇게 결론을 맺고 나자 운전이 더더욱 좋아졌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나와 내 차는, 내 인생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 지금의 삶과 자신감, 꽤 괜찮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오늘도 난, 기꺼이 운전대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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