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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Sep 27. 2022

염치와 뻔뻔함의 상관 관계

며칠 전 정말 화 나는 일이 있었다.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침 맞이를 하고 있었다. 어떤 할줌마 한 분이 거침 없이 갈짓자 걸음으로 팔을 휘휘 저으며 교문을 가로질러 운동장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코로나 시국이 엄중하니 제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르신, 학교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다음부터는 이리로 안 다닐께요.” 먼 길을 빙 돌아가는 대신 학교를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을 선택하신 그 분은 한 마디를 남기고 씩씩하게 갈 길을 서둘러 가셨다.      


‘아니,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나는 속으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성질 같아서는 할머니를 붙잡고 한바탕 속시원히 쏘아부치고 싶었다. 얼마 전 화를 내지 말자고 글을 쓴 게 무색할 정도로 할머니의 뻔뻔하고 안하무인적인 행동에 화가 났다. 결국은 아무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지만 나이든다는 것과 염치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염치 있게 나이 드는 것

오래 전 읽은 글 중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의 화장실 사용에 관해 쓴 내용이 생각난다. 필자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올 때 젊은 사람들은 갈 때 모습과 나올 때 모습이 변함없이 단정하다고 했다. 반면 나이 든 사람은 들어갈 때는 정상이었으나 볼 일을 보고 나오면서 바지 춤을 잡고 단추를 잠그는 등 옷매무새를 갖추지 않고 화장실을 나오는 모습을 꼭 집어 지적하였다. 요즘은 그래도 이 정도로 막무가내이신 어르신들은 잘 안 계시지만 간혹 그런 분들도 계셔서 이해가 가는 내용이긴 하였다.      


김이나 작가는 나이가 들어가며 가장 지키고 싶은게 바로 ‘염치’라고 하였다. 수줍음이 있는 어르신이 되고 싶다고 하였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강조하였다. 학교 운동장을 지름길 삼아 가로질러 가신 어르신이나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와서 옷매무새를 간추리는 할머니들도 한 때는 수줍음 많은 앳된 소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힘겨운 세월을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 체면이나 염치 같은 것은 사치품이 되었을 것이다. 사는게 너무 각박하였고 상상도 못할 힘든 일을 많이 겪다보니 그리 되셨을 것이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딸들은 엄마인 내가 ‘노답’이란다. 평상시에는 고매한 품위를 잘 유지하다가도 딸들과 함께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바로 ‘노답’ 아줌마가 된다. 학교에서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제재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 딸들은 공공장소에서 내가 하는 행동들이 탐탁치 않다. 자취방 문을 열어주지 않길래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른 나는 또 ‘노답’ 엄마가 되어버렸다. 식당에서도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바로 딸들의 제재가 들어온다. 불편하기 그지 없다.     


뻔뻔함을 넘어 당당함으로

할머니들이 다 염치 없고 뻔뻔한 건 아니다. 뻔뻔함을 넘어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분들도 많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를 쓴 김원희 할머니도 젊었을 때는 꿈만 꾸었던 세계여행을 할머니가 되어서야 캐리어 하나만을 달랑 들고 도전하셨다. 젊었을 때는 이것저것 생활의 걸림돌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감내한 할머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머니의 용기와 결단의 당당함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인 ‘옥분’ 할매도 수줍음과는 거리가 먼 분이다. 민원을 너무 많이 넣어 도깨비 할매라 불리는 옥분은 원칙주의 9급 공무원에게 영어를 배운다. 영어 공부의 목적은 바로 미 상원의회에서 일본의 위안부 관련 만행을 당당하게 고발하는 것이었다. 옥분 할매의 실제 모델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한 고 김군자, 이용수 할머니라고 한다. 꽃다운 소녀 시절에 위안부로 끌려가 상상도 못할 지옥같은 삶을 살았을 그분들. 한평생 그 한과 고통을 이겨내고 승화시켜 할머니가 되어서 당당하게 일본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과연 김원희 할머니와 옥분 할매가 젊은 나이였다면 그런 과감한 도전과 당당한 고발이 가능했을까? 세월의 원숙함과 인고의 생을 살아오면서 나온 지혜와 결단이 그러한 멋지고 과감한 행동들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아들을 낳고 나니 세상에 두려울게 없더라는 말을 하며 깔깔 웃던 친구가 생각난다. 겁 많고 수줍음 많던 소녀가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듬숭듬숭 낳고 또 키우면서 점점 용감해지고 강해진다. 여린 소녀에서 생활력 강한 여자로 엄마로 거듭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든 머뭇거리며 남의 눈치를 보던 소심쟁이에서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가방부터 던지는 과감쟁이로 점점 변하게 된다.     


염치가 조금 없어도 괜찮다. 간혹 가다 ‘노답’이어도 괜찮다. 그 대신 우리 아줌마, 할줌마들은 인고의 세월을 겪어온 훈장같은 당당함이 있다. 어떤 것이 귀한 것이고 소중한 것인지 분별할 지혜를 얻었다. 엄마로서, 딸로서, 캐리어우먼으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이 많은 역할들을 오롯이 해내면서 얻어낸 진주같은 인고의 선물이다. 거기다 나를 위해 세계여행 같은 멋진 일을 저지를 용기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염치 없어지는 뻔뻔함의 경계만 잘 지킨다면 우리도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로 살 결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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