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자길을 걸었다. 보통 전체코스(780km)는 한 달에서 한 달 반이 걸리는데, 나는 115킬로미터를 걷는 사리아(Sarria) 지역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하루에 23-40킬로미터를 걷는 일정이다. 쉬지 않고 걸으면 하루에 5-6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길을 걷기 때문에 쉬지 않고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의 경우 하루에 최소 여섯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시간을 걸었다.
사실 사리아는 순례자길의 가장 초보코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첫날에는 가볍게 걸음을 내딛지만, 첫날에 쌓인 근육통을 가지고 두 번째 날의 여정을 소화해야 한다. 하루만 지나도 골반, 무릎, 종아리 등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쌓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증 위에 또 다른 통증이 쌓인다. 그 통증들과 친해지며 걷는다. 이미 한 달여를 걸어온 이들의 발은 물집 천지이다. 빨갛고, 퍼렇고, 거뭇거뭇한 멍들이 발을 장식한다. 저 발을 가지고 어떻게 여기까지 걸었는지, 도대체 왜 계속 걷는지 궁금해진다. 반복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탓에 무릎이 욱신거려 뒤로 걸었다가 지그재그로 걸었다가, 각자만의 걷기 방식을 창조한다.
뜨거운 해를 피하기 위해 빠르면 아침 여섯 시, 늦어도 보통 여덟 시부터 걷기 시작한다. 열두 시가 넘어가면 스페인의 햇살이 등뒤를 뜨끈하게 데운다. 갈리시아 지방의 특성상, 햇살이 아주 뜨겁다가도 비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기도 한다. 질척한 산길을 추적추적한 비를 맞으면서 걷는다. 푸릇한 산길을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을 상상하면 낭만 같기도 하지만, 삐걱거리는 무릎과 10킬로 남짓한 배낭을 생각하면 꼭 그렇진 않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이 아주 다채로운 이유들을 가지고 걷는다. 칠십 대 한국 할머니 명숙은 폐암말기를 진단받고 매일 약을 챙겨 먹으면서 길을 걸었다. 살면서 해외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으며, 영어도 스페인어도 할 줄 모르는 ‘토종한국인’이라고 하셨다. 노윤은 평생의 버킷리스트로 마음에 오래 품고 있다가, 알바를 하며 장비를 사서 모으고, 회사 사장님과 동료들을 모두 설득해 한 달의 휴가를 받고 이곳에 왔다.
시력이 좋지 않아 빠른 교통수단을 타면 풍경을 볼 수 없다던 에릭은 두 발로 걸을 때 자연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아주 작은 섬에 사는, 한병철과 니체를 좋아한다던 철학 선생님 니코는 학생들과 함께 팀을 꾸려 까미노를 걸었다. 지칠 때는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삼 년에 걸쳐서 까미노를 걸었다는 한 아저씨는, 삼 년 전에는 틈틈이 휴가를 내서 걸었고, 이제는 은퇴를 하고 이 길을 마무리하러 오셨다고 했다. 첫날에 만난 멕시코 친구는 몇 달 전 아홉 살 된 아들을 잃고 걸으러 왔다.
구구절절한 사연부터, 유쾌하고 재미난 사연까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까미노를 걸었다. 사람들은 혼자 걷다가, 같이 걷다가 또 혼자 걸었다. 누군가는 사일에 걸쳐서 걷는 길을 누군가는 이틀에 재빠르게 걸었다. 누군가는 새벽 여섯 시에 길을 나섰고, 누군가는 느지막이 아홉 시에 길을 나섰다. 5킬로미터마다 멈춰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여유 있게 걷는 이도 있었고, 걸을 때 쭉쭉 걸어야 한다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가방에 간식이며 과일이며 바리바리 싸서 걷는 사람도 있으며, 걷다 보면 나오는 카페에서 사 먹겠다며 가볍게 걷는 사람도 있었다. 10-20킬로그램의 가방을 한 번도 동키서비스(가방배달서비스)를 맡기지 않고 걷는 사람도 있으며, 매일 동키서비스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사람도 있었고, 대화를 하면서 걷는 사람도 있었고, 울면서 걷는 사람도 있었다. 이토록 다채로운 까미노. 이 다채로운 사람들은 하나의 길을 걷는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모두 같다. 산티아고.
틈틈이 보이는 노란색 화살표와 비석을 따라서 걷다 보면 모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대성당 앞의 넓은 광장에 사람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도착한다. 드디어 나 도착한 거야? 정말 다 온 거야? 하며. 광장에 가방을 내려놓고 모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서로는 서로의 사진사가 된다. 사진을 찍어주며 말한다. 정말 축하해요! 해내셨군요! 대단해요! 거침없는 축하의 말들. 광장의 끝쪽에는 한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그룹의 멤버가 도착할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각자가 다른 속도로 걸었기에 도착하는 시간도 다르다. 첫째 날 만난 사람이 어제 광장에 다녀갔을 수도 있고, 오늘 이곳에 올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연히 이 광장에서 길에서 만난 친구를 다시 만나면 일단 끌어안는다. 에릭, 너! 도착했구나! 너 해냈구나! 너, 무릎 괜찮아? 안 힘들었어? 진짜 대단하다, 우리!
서로에게 박수를 건넨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쉽고,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어려웠을 수 있는 여정이겠지만,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적어도 알고 있다. 너, 고생했구나. 내가 경험한 꽤 어려운 여정을 너도 지나왔구나. 너도 그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구나.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왔구나.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 그 길이 쉬웠을리 없다는 공감, 그리고 결국에 너도 나도 해냈다는 마음에 사람들은 끝없이 환호하고 축하하며 축복의 말을 건넨다. 기쁨과 축하가 솟아나는 광장이다.
이 광장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이틀 내내 바라보았다. 미소가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서로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 광장이 혹시 죽으면 도착하는 천국의 입구 같은 곳일까 생각했다.
삶의 끝에, 누구에게도 삶이라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모여, 야, 너 인생을 모두 다 살아냈구나, 하고 부둥켜안으며 축하를 건네는 곳. 각자의 사연을 품고, 각자의 방법대로 살아온 이들이 인생이라는 까미노를 다 걷고 도착하는 곳. 어떤 사연을 품고 왔든, 어떤 방법으로 걸었든, 축하를 받아도 마땅한 곳. 기쁜 죽음의 광장, 산티아고.
까미노와 인생은 다르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과 죽음에 이르는 것은 다르지만, 적어도 같은 점이 하나 있다. 까미노를 걸었든, 인생길을 걸었든 모두가 박수와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 물론 ‘모든 인생이 축하를 받아도 마땅하다'는 말이 현재의 세상을 바라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산티아고 광장에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길을 걷는 내내 삶을 사는 건 길을 걷는 것과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걸을 수 있는 것 말곤 할 수 없고, 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기쁨과 슬픔이 매일, 그리고 순간마다 교차한다는 것. 오늘은 죽을 것 같이 힘들다가도 또 어느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기도 한다는 것. 누가 곁에 있기에 그리고 없기에 나의 길들이 변화무쌍하다는 것. 사람마다 걷고 또 사는 법이 다르며 그중 틀린 건 없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걷든, 우리는 결국 도착한다는 것…
이 기쁜 죽음의 광장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환호하듯, 내 삶의 끝에 결국 있을 환희의 순간을 기다려본다. 길에서나 삶에서나 나는 걷는 것 그리고 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오늘도 주어진 삶을 산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걷는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