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보다 배우는 것
대학원에 와서 만족스러운 것, 불만스러운 것들이 다양하게 있지만 한 선생님의 수업은 늘 시간마다 감동이 있었다. 대학원생이 실질적으로 듣는 수업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 전공도 아니고, 내 논문에 쓸 일이 없는 한 선생님의 수업을 두 개나 들었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다. 바로 곽** 선생님의 교육철학 수업이다. 하나는 교육철학의 기본기를 닦는 기본 수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민교육을 탐구하는 수업이었다.
오늘 선생님 수업의 공지를 들어갔는데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내용은 '지난 시간에 미처 마치지 못한 분량인 1,2장을 읽어보라고 했었는데, 그것까지 읽어오려면 과부하가 걸릴 것 같으니, 5장만 읽어오세요.' 나는 이 하나의 공지에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이 선생님이 수업과 수업 사이, 우리와 하는 그 수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꽤 많으니 이런 기본적인 것을 지켜주는 것이 고맙다. 다른 하나는, 학생이 소화 가능한 영역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이다. 나도 가끔 과외와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혹은 무엇인가를 알려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늘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하나는 나 때문에, 하나는 그 배우는 사람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많은 것을 알려줘야 내가 능력자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것을 알려줘야 이 사람이 뭐라도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조급함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어쩌면 자신감 있는 교수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논문학기를 보내고 있다. 논문만 붙잡고 있어도, 내 역량이 부족한 탓에 늘 허덕이는데 논문에 쓸 일이 없는 이 수업을 듣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번에 들었던 수업이 참 행복했던 탓이다. 수강을 할지, 청강을 할지 고민하던 찰나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나는 '자신이 없어서' 수강을 못하겠다고 했다. 논문을 쓰면서, 교육철학을 전공하는 다른 분들과 함께 얽힐 자신이 없었다. 그 말에 선생님의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잘 할 자신? 나는 교육(철)학을 해서인지, 잘하는 것보다 (진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번 내 수업이 어떻게 보면, "잘 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과 "열심히" 해서 스스로 자신을 뿌듯하게 느끼는 것의 교육적, 도덕적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수업이예요^^ 생각 좀더 해 보고 결정하길 바랍니다. 강선생이 어떤 결정을 하든 존중할게요~
한국의 대학원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 메일이 참 다정하고 따스하다는 걸 알겠다. 나는 그녀의 따스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겁이 나서 '청강'을 결국 택했지만, 그녀의 존중에 마음이 따스해져 그만,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나는 배움은 '안전'할 때 일어난다고 믿는다. 배움이라는 것은 나의 변화, 내 존재를 형성하는 것과 동일한 것인데, 이는 내가 열릴 때 가능하다. 그 열림은 '안전'할 때 가능하다. 물론 내가 이 수업에서 엄청난 철학적 논의를 하는 것도 아니며, 사실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벅차지만, 나는 이 수업에서 내가 배우고 있다고 믿는다. 배움은 기쁨이다. (논문은 고통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