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작은 성취 1. 돈키호테 완독
이 글은 지난 7월 3일부터 8월 29일까지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느꼈던 짧은 생각들을 담은 기록입니다. 자유 발제문으로 제출했던 글을 옮깁니다.
저는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삽니다. covid19 이후, 스페인은 두 달 정도 이동제한령과 국경 봉쇄령이 내려져서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고, 셧 다운이 풀린 이후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죠. 그때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돈키호테 온라인 독서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벽돌처럼 두꺼운 돈키호테를 종이책으로, 그것도 1,2부 두 권 다 가지고 있었던 제 자신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네요.^^ 선물로 주는 사람이나 들고 가야 하는 사람이나 부담이 없을 수 없는 두께의 책인지라, 언젠가는 꼭 완독을 하고 싶었는데, 올여름, 그 꿈을 이루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책 표지 안 쪽에 작게 적어둔 친구들의 메모를 다시 꺼내 읽으며 모처럼 혼자 또 뭉클했네요.
처음엔 스페인 북부의 목가적인 풍경들에 매료되어 계속 읽을 수 있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많다 보니 그 이름들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돈키호테가 풍차와 싸웠던 들판이나 소떼, 양 떼가 무리 지어 다니던 풍경들, 목동들이 저녁을 먹고, 쉬며, 늘어지게 자던 밤의 숲, 해가 지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객줏집 풍경들이 기억에 남아요. 돈키호테가 마지막 모험을 펼치다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던 바르셀로나에 대한 묘사 역시 흥미로웠고요.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객줏집 시녀들의 장난에 속아 사지가 묶인 돈키호테를 태우고 밤새 주인을 지켰던 로시난테의 그날 밤과, 산초가 열흘 통치를 마치고 잿빛을 만나 ‘너와 함께 했던 시절들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다’며 이야기 나누던 장면,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두 사람이 마을에서 친구들을 만나 서로 안아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병상에 누운 돈키호테의 마지막... 결론을 알고 읽었는데도 울컥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는 아무래도 산초 파인 것 같네요^^ 산초는 그 뒤로도 아내랑 딸이랑 알콩달콩 잘 살았을 것 같아요. 비록 열흘 천하로 끝이 났지만, 산초는 간절히 원하던 통치자의 꿈을 결국 이루어봤으니까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이뤄보는 것, 작은 성취의 경험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쓸쓸하게 떠난 돈키호테를 보면서 또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앞으로만 내달렸던 주인 곁을 말없이 지켜주던 늙은 말, 로시난테도 마음에 남아요. 저는 왜인지 꿈을 위해 꼿꼿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캐릭터들의 비장함이나 고독함보다, 그 곁에서 온갖 현실적인 뒤치다꺼리는 다 하며 그 꿈을 말없이 응원해주는 주변 캐릭터들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나저나 스페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장난’을 좋아할까요? 그 시대 문학의 분위기였을까요? 돈키호테는 ‘모험’이라 불렀으나, 저에게는 그저 ‘조롱’이나 잔인한 ‘인격모독’에 가까워 보였던 수많은 상황들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오랜만에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곳곳에서 저와 함께 돈키호테를 읽으셨던 모든 분들께도 안부와 존경을 전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