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어차피 연락도 안 할 거면 그 수많은 카카오톡 연락처를 왜 소유하고 있는지, 어차피 전화 한 번 안 걸 거면 왜 굳이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지. 몇 년 뒤면 더 이상 연락 안 할 것 같은 사람들도 어쩌면 연락할지 몰라하면서 연락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연락처가 필요한 경우는 언제든 생기지만 굳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전하고 챙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어찌 보면 당장 같이 사는 가족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데 수많은 사람 일일이 챙겨주는 건 참 어렵다.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친구뿐 아니라 가족이란 존재도 참 놀랍다. 어떻게 몇십 년씩 같이 살면서 안 질릴 수가 있는지. 매일 밤 같이 잠을 자고 뭔가를 하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안 질리는지 참 신기하다. 물론 오래도록 붙어 있으면 질려 버릴 수도 있지만 가족이 질리지 않는 건 적당한 선을 유지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오래 사귄 연인이 질려버리는 건 적당한 선이 유지 안 되어 그런 건지 미스터리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 강아지도 참 신기하다. 어찌 매일같이 붙어 있으면서 좋기만 한지. 나이가 들며 나는 할머니 냄새도 머리에서 나는 이상한 미역 냄새도 다 정겹고 좋다. 물론 가끔씩 이빨을 내세우며 나를 물려고 할 때면 속상하지만, 그런 까칠한 매력 역시 좋다. 바보같이 신경을 건드려서 물려도 연고와 대일밴드를 찾고 있으면 미안한지 다가와서 내 표정을 살피는 것도 좋다. 이럴 때면 꼭 딸 바보처럼 강아지 바보 같다. 지금도 내 옆에 꼭 붙어서 잠자고 있는데, 가족 중에서 나에게 가장 까칠한데 잠 잘 때면 꼭 내 이불에서 자는 게 그래도 자기를 가장 좋아해 주는 사람이 누군지는 아나 보다.
가족이란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가까운 존재란 그런 것 같다. 서로를 온전히 좋아해 주는 것. 조금 미운 부분이 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 가까운 존재일수록 상처 주기도 쉽지만 당연히 이 관계가 끊어질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2018년의 어느 날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