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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19. 2021

주말의 도서관

주말에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집에만 있기 심심해 읽고 싶은 책을 '내일드림 서비스'를 통해 받아 봤는데, 지금은 다행히 도서관이 열려 있다. 이번 달은 유독 도서 구입비가 높았다. 책방도 자주 놀러 갔고, 내가 참여하는 온라인 북페어에서도 도서 구입을 했고, 아는 작가 분이 신간을 냈고. 여차저차 하다 보니 10만 원을 훌쩍 넘어 15만 원을 달려간다. 한 달 생활비가 60만 원 정도인 걸 생각해 보면, 그저 다른 거 안 사고 책만 사 읽은 거다. 그럼에도 읽고 싶은 책이 더 있어, 도서관에 찾았다. 


집 근처에 10분 거리에는 기적의 도서관이 있다.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 책 비중이 높은 도서관인데, 다행히 2층에는 성인들을 위한 책들도 많다. 나름 인기 있는 책들도 보이는 걸 보니, 책 큐레이션에 신경도 쓰는 것 같다. 쾌적하고, 중랑천이 통유리로 보여서 뷰도 좋다. 한가한 평일 낮에 찾으면, 그보다 호사일 수 없다. 아쉽게도 요즘은 치열한 평일을 보내고 있어,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번 주말은 달랐다. 일어나서부터 도서관 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발을 동동거렸다. 당근 중고 거래가 두 시 반이니, 이거 끝나고 갈 수 있으려나, 하다가 거래자가 시간을 바꿔 세 시 반에 원목 행거를 만 오천 원에 넘기고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들고 얼른 나섰다. 이 도서관은 주말에 다섯 시까지 연다.


한 달만에 찾은 도서관은 역시 고요하다. 오늘 내가 눈독 들이는 책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과 강화길의 소설 <화이트호스>, 사노 요코의 에세이 <죽는 게 뭐라고>다. 아,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도. 


최근에 홍대의 한 독립 책방에 들렀다가 강화길의 소설 <다정한 유전>을 추천받았고, 이 작가님 소설을 좋아한다면 <화이트호스>도 읽어보라고 해서다. 이슬아 작가님의 책은... 하도 핫하지만,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와 그녀가 공저로 낸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만 읽어봤다. 이슬아 수필집도 여행 가서 몇 챕터 읽어보고, 자꾸 눈에 밟히는 책인데 막상 구입하지는 못하고 있는 책. 사노 요코의 책은 <사는 게 뭐라고>를 너무 재밌게 읽었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인 그녀가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냉소적이고 시크하고 담백하게 그녀의 일상을 적은 책이다. 밤새 한국 드라마를 보며 잘생긴 남자 배우에 감탄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자기처럼 이 카페에 와 음식을 즐기는 고독한 일본 할머니들을 보며 그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솔직하고 재밌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도 감명 깊게 읽어서 저자인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도서관에 들어서니, 읽고 싶었던 책은 안 보이고 (분명 대출 가능이었는데! 그거 읽고 있는 사람도 안 보였는데!) 또 다른 책을 기웃대다가 결국 처음 적어 온 책들과 조금 다른 책들까지 집어서 빌려 왔다. 마치 쇼핑 리스트를 적어 갔는데, 막상 마트에 들어서니 오늘의 히트 상품이 보이고, 아 맞다, 저거도 맛있는데, 하면서 예상에도 없던 된장과 재래김과 간단 조리 파스타를 사들고 온 기분이랄까. 강화길의 <화이트호스>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주주>, 에쿠니 가오리의 <몬테로소의 분홍 벽>, 마스다 미리의 <코하루 일기>를 대여해 왔다. 강화길 외에는 일본 작가고, 나는 일본 작가를 다소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무조건 일본 작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저 작가들의 작품이 너무나도 좋고, 솔직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무조건 빌리는 편이다. (작가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 편)


책이 왜 그렇게 좋을까? 솔직히 책 사는 돈 5만 원 정도만 떼서 옷을 사는데 쓰거나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멋진 내면도 좋지만 멋진 외관을 갖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사는 데는 마음이 한없이 열려 있고, 옷 사는 데는 마음이 한없이 닫혀 있다. 세 달에 한 번 옷 사러가는 것도 참 귀찮은데, 매일 책방 가는 발걸음은 참 가볍다. 잔고도 가벼워지고. 마음에 드는 옷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마음에 드는 책은 참 잘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방에 책이 많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30여 권이다. 이번에 봄맞이 10권 정도를 판매 수익금 절반을 유기동물 후원에 쓴다는 책방에 기증했다. 책을 읽고 그 책과 어울리는 친구에게 선물도 자주 하는 편이다. 중고 책방에 파는 건 한때는 좋아했으나, 너무 헐값에 팔리는 걸 보고, 그 값이면 아예 기증이나 나눔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재밌는 구절은 읽고 또 읽고, 작가에게 감탄하고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아름다운 문장에 눈이 멀 것 같다.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쓰고, 부지런히 좋은 문장을 베껴 써야지. 일단은 이 글을 쓰다 보니, <주주>가 너무 읽고 싶어서 얼른 책 읽으러 가야겠다. 


20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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