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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Jan 05. 2024

미식축구는 미국식 축구예요?

미국에서 1년 살기

한국에서는 축구도 잘 안 챙겨보던 부자가 미식축구를 보러 갔다.

한동안 둘이 함께 입장권을 예매하며 ' North Carolina Tar Hills'이라는 지역 대표팀에 대해 찾아보고 큼지막한 로고가 박힌 모자도 사며 잔뜩 들떠있었다.

평소에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경기장에 간다는 게 의외였지만, 미국에 왔으니 각 스포츠경기 직관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수긍했다.

'그래,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연애초기에 남편은 직장인 야구동아리, 스쿠버다이빙 같은 회사동호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직장인 리그에도 참여하는 것 같았고 스쿠버다이빙 자격증까지 갖고 있어서 처음엔 엄청나게 활동적인 스포츠맨인 줄 알았었는데, 그 모든 활동은 결혼과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아이와 함께 야구경기장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특별히 어느 팀 경기에 집중하거나 TV중계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경우는 없었다.

그저 올림픽이나 국가대항경기의 준결승정도부터, 그러니까 방송 3사가 앞다투어 중계방송을 할 정도의 경기들은 보는 정도였다.

예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가만 보니 첫째 아이의 성격이나 취향이 이런 남편과 꼭 닮아 있었다.

나 역시 스포츠 경기 관람을 전혀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흔히들 말하는 '남자애들은...'이라는 범주와 동 떨어진 아이의 모습이 조금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다.

'원래 남자애들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가 문득 남편을 떠올리면 모든 게 이해가 됐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에 상관없이 누군가는 즐기고 누군가는 덜 즐기는 것뿐이었다.




TV에서 자료화면으로 보기만 했지 정식으로 미식축구 경기를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이는 경기 규칙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는 만큼 재밌는 거라며 남편과 아이는 NC 대표팀의 역사와 기록들, 경기 규칙과 관람 수칙까지 찾아보며 그 어느 때보다 스포츠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경기당일, 아이는 땡볕에 3시간 동안 앉아 있다가 너무 더워서 쓰러질 뻔한 것만 빼면 엄청 재밌었다며 얼굴은 발갛게 익은 채 잔뜩 흥분하여 돌아왔다.

너무 신나 하는 아이의 모습에 '나도 가볼걸...' 하는 생각이 잠시 잠깐 들기도 했지만, 바로 그 땡볕이 싫어서 가지 않았었기에 아이가 찍어온 경기장 사진으로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를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냐는 물음에 아이는 사람들이 소리 지르면서 응원하는 것도 재밌었고, 선수들이 진짜 빨리 달려가는 것도 신났고, 서로 부딪히면 튕겨져 나갈 정도로 힘이 센 것도 정말 멋있었다고 했다.

그랬구나. 현장감을 제대로 느끼고 왔구나.




미국사람들은 스포츠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주말에 마트에 갔다가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남편의 티셔츠를 보더니 "나도 OO팀 팬인데 반갑다."며 말을 걸어왔다.

지난 경기 봤냐며 너무나 호의적인 미소를 띤 채 이야기를 해서 순간 당황한 우리는 "아니, 못 봤다."라고 단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 경기에서 누구누구가 어떻게 득점을 했고 특히 마지막에 어떤 순간이 진짜 최고였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침 그 사람이 계산을 할 차례가 되어 대화가 끊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한껏 호의를 가지고 다가온 이 사람이나  우리나 참 뻘쭘한 상황이 될 뻔했다.

남편이 입고 있던 미식축구 유니폼은 이월상품 할인매장에서 보고 파격 할인가와 디자인이 맘에 들어서 산 것뿐이었다.

이 지역 팀도 아니었기 때문에 흔치 않은 팬을 만났다고 반가워하는 그 사람에게 차마 사실을 얘기할 순 없었다.

계산을 끝내고 가면서도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우린 이 팀이 어느 지역 팀인지도 몰라요...'

유니폼 하나 만으로도 동질감을 느끼며 호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고 하면서, 남편은 미국에 있는 동안 더 이상 그 티셔츠를 입는 일이 없었다.

어디서 또 누군가가 나도 팬이라며 말을 걸어올지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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