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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Feb 01. 2024

쇼핑천국에서 살아남기

미국에서 1년 살

쇼핑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빠듯한 예산으로 1년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수많은 쇼핑센터와 브랜드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동안 직구했던 브랜드들은 어찌나 세일을 자주 하는지 자칫하면 지갑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탈탈 털릴 것 같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90% 할인이라도 사지 않으면 100% 절약'이라는 말을 되뇌며 윈도쇼핑으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이런 우리에게도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곳이 있었다.

바로 이월상품들을 모아둔 파격 할인코너나 천원샵같은 곳이었다.



딱히 쓸데는 없는 예쁜 쓰레기.

분명히 필요 없다는 걸 아는데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마다 카트는 버려둔 채 새롭게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장본 식료품들이 뜨뜻해질 무렵에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 일쑤였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예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수많은 마트들 중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티제이맥스나 로스 같은 재고떨이용 아웃렛이었다.

꼭 뭘 사려고 가는 곳이라기보단 쓱 한 바퀴 돌다가 생각지도 못한 득템을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저 마음을 비우고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들려 구경을 했다.



대부분의 옷들은 워낙 유행스타일이 다르고 체형이 달라서인지 맘에 드는 것이 없었지만, 운동복들은 정가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운동에 취미를 붙인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제값을 주고 사긴 아깝지만 한번 써보고 싶었던 아이템들이나 웬만한 생활용품들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을 60~9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당장 사용해야 하는 우리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예쁜 그릇들이나 텀블러 같은 것들은 한국에 돌아가서 지인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으로 사두기도 했는데, 거의 1년 동안 틈틈이 사모으다 보니 진정한 의미의 기념품이 되었다.



유행이 지난 것들이나 상자가 손상된 제품들은 더욱 할인율이 높았다.

원래는 $50이 넘는 예쁜 핼러윈 유리컵도 박스가 훼손된 이월상품이라 $5에 판매되고 있었다.

정가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구경할 때마다 얼마나 '아니야. 필요하지 않아. 사지 않아.'를 되뇌었는지 모른다.



미국이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의 체격이나 체형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상상도 못 했던 사이즈 300이 넘는 운동화를 처음 봤을 땐 '진짜 이걸 신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한가?' 싶었고, 대부분의 옷들은 사이즈가 너무 커서 '내가 왜소하고 날씬한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인데 왠지 아담해진 것 같은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한국에서와 달리 체중을 신경을 덜 쓰며 마음껏 식도락을 즐기게 되었다.

처음엔 시큰둥하게 따라다니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던 남편은 어느 날 수많은 옷 무더기 사이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티셔츠가 $9.99에 판매되고 있는 걸 발견한 후로 보물 찾기에 빠져버렸다.

자기 사이즈의 마음에 꼭 드는 옷을 찾아낸 날이면 의기양양한 얼굴로 어찌나 좋아하던지, 나야 이 재미에 동참해 주는 게 고맙긴 했지만 그 이후로 정식매장에서 정가를 주고는 사지 않게 되는 부작용도 생겨버렸다.  



각종 문구류와 잡다한 가내수공업을 좋아하는 나는 크래프트용품 코너에서 레터링 펀칭기를 구입했다.

일 년 동안 둘째 아이의 재밌는 장난감이 될 거라는 건 순전히 핑계였고 40% 세일이라는 문구에 홀랑 넘어간 충동구매였다.

이후에 자주 방문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20%~ 30% 세일은 늘 하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리고 40% 세일은 특별한 할인가가 아닐 정도로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그나마 할인율이 가장 클 때 구입했다는 게 좀 위로가 되었다고 할까?

마음 같아서는 모든 아이템들을 종류별로 다 갖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집에 있는 펀칭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으니, 결론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구매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일년살이를 위해 어느 정도 정해둔 예산이 나의 물욕과 탐욕을 잠재울 수 있는 고마운 족쇄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또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너무 싸, 진짜 싼 거야'라며 신나게 쟁여놓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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