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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Jan 30. 2023

밥이란

월요일이다. 내가 준비해야 할 주간 메뉴와 장 볼거리를 적다 보니 현타가 온다. 3X7=21 끼니를 뭐로 채우나. 파리에 와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게 뭐냐 하면 밥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료는 싸고 가공품은 더럽게 비싸고 애들 학교 급식은 엉망이고 한국은 멀어 배민이 닿지 않으니 내가 다 해야 한다. 쓱배달 같은 게 없으니 중국 마트에서 매번 10kg짜리 쌀을 사서 끌고 와야 하는데 한 달도 안 되어 다 먹는다. 같은 곳에서 배추랑 무를 끌어다가 평생 담가본 적도 없는 김치를 두 번, 깍두기를 세 번이나 했다. 나는 이제 김밥천국 아주머니 저리가라로 김밥도 빨리 말 줄 알 뿐만 아니라 일본식 마끼도 할 줄 안다. 프랑스에 와서 내 밥 짓는 역량은 늘어났지만 그래도 늘 애들 도시락을 싸다 보면 같은 거만 싸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저녁때면 "엄마 오늘 저녁 뭐야?" 하고 물어보는데, 대답하면 아이들은 자주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이 자식들. 이 음식에 어떤 기획력과 창의력을 포함한 노동력이 들어간 건데. 그래도 해놓으면 후딱 다 먹고 일어나는데 그게 고마우니 나도 참 비굴하다. 어쨌든 나는 밥 하는 게 너무 싫지만 오늘도 분발할 수밖에 없다. 간혹 세상이 아이들을 사납게 할퀴고 지나갈 때, 품 밖으로 발을 디딘 이상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많았고, 결국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래도 그놈의 밥 한 끼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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