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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Nov 11. 2023

도마뱀

여름방학 마지막 3주의 화두는 도마뱀이었다. 시작은 다빈치 성이라고 알려진 Clus luce 성에서 였다. 덥고 지루하던 차에 어린 도마뱀 한 마리가 발 아래를 지나갔다. 잽싼 둘째가 도마뱀을 덥쳤다.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내면서 달아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패트병 속에 갖히게 되었다.


다음날 도마뱀이 들어있는 패트병을 테라스에 두고 도마뱀 용품 가게에 갔다. 작은 도마뱀에겐 제법 큰 집과 모래, 먹이용 귀뚜라미를 샀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도마뱀이 죽어있었다. 패트병에 있기 너무 더운데, 하고 생각만 했지 그대로 땡볕에 둔 게 미안했다. 아이들은 빳빳한 도마뱀을 들고 한없이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나의 고난이 시작됐다. 일년도 못되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 도마뱀을 살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솔루션은 이랬다. 다시 잡아서 기르다가 귀국 할 때 놔주겠다. 그리고 눈만 뜨면 나를 들볶았다. 도마뱀은 묘지에 많다며 지도 검색을 통해 발견한 묘지에 당장 가자고 했다. 얼마나 닥달하는지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아서 가기로 했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도마뱀을 목격한 바 있는 오베르 쉬르아즈에 있는 고흐 묘지에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곳은 집에서 한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그렇게 세번을 갔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쓰기에 너무 고달픈 시간이었는데, 어쨌든 집요하게 간 끝에 도마뱀을 잡아올 수 있었다.  


새 도마뱀은 완비된 시설에서 평화롭게 지냈다. 일광욕을 위한 등도 설치해주었고 귀뚜라미도 잔뜩 넣어줬다. 온도계도 설치했다. 비록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추워져가는 바깥과 비교해서 살만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낙 도마뱀 매니아인 막내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극 T인 둘째도 하루종일 도마뱀을 들여다보며 좋아했다. 햇빛에 있을 때 도마뱀의 나른한 표정을 흉내기도 하고, 올라가 앉아있을 수 있는 해먹을 설치해주기도 했다. 뭔가 따뜻하게 아끼는 모습이 나도 보기 좋았다.


문제는 일주일 후 도마뱀이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둘째가 실수로 문을 열어놓았는데 아니나다를까 도마뱀은 없었다. 놀라서 찾다보니 테라스에서 다시 목격어되었지만 쫓아가기도 전에 옆집으로, 또 더 옆집으로 멀리멀리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둘째는 정말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아꼈는지 알아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아서 쩔쩔맸다. 영 울음을 그칠 줄 모르기에, '그냥 가게 가서 한마리 살까' 했더니 아이는 단호하게 '이제 다시는 안 기를 거야'라고 했다. 아, 진정한 상처. 괴로워서 도마뱀 흔적도 보고싶지 않아 하길래 집이며 용품을 한달음에 정리해 창고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끝이 났다. 이 싱거운 이 이야기는. 이걸 대충이라도 적어두는 건 그 별거 아닌 도마뱀이란 것이 이번 여름 아이들에게 가장 뜨거운 대상이기도 했거니와, 더 자라서도 이 기억을 잊지 말았으면 해서다. 앞으로 이 아이들에겐, 한껏 마음을 쏟고 열정을 다하는 대상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걸 잃어버려야 하고 상처가 아파서 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위로까지는 아니라도 참고라도 되기를. 그렇게 지나갔었지, 그렇게 지나갈 수 있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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