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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23. 2024

퇴고와 퇴사 사이

똑똑한 인공지능의 헛발질

퇴고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글로벌 인터넷 기업에서 출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에 질문을 넣었다. 내놓은 답을 확인하니 고개가 갸우뚱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여러 번 생각해 고치고 다듬는 행위, 퇴고(推敲)에 관해 물었는데 인공지능이 답한 내용은 회사를 그만두고 물러남을 뜻하는 퇴사(退社)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혹시 퇴고의 동음이의어가 있는 건가 싶어 국어사전을 뒤졌는데 그런 내용은 없었다. 퇴고는 오직 글을 다듬는다는 뜻만 있었다. 아직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이 완벽한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왜 퇴고와 퇴사를 헷갈렸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저런 추리를 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에 닿았다.


퇴고보다 퇴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 이런 결과가 나온  아닐까? 요즘 시대는 진지하게 퇴고하는 사람보다 퇴사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인공지능은 퇴고보다 퇴사에 대한 학습을  많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방대한 학습 데이터와 지식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의 뇌에는 퇴고보다 퇴사에 대한 답변이 많이 쌓여 있을 테니 퇴고에 대해 질문을 입력해도 비슷한 텍스트의 퇴사에 대한 답변을 내놓은  아닐까? 인공지능의 프로세스를   없는 문과형 뇌는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


AI 시대의 일잘러들이 혁신의 도구로 찬양하는 인공지능 챗봇을 귀찮은 일을 해결해 주는 보조도구 정도로 생각해야지, 전적으로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느낀 사건이었다. 퇴사와 퇴고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공지능 대화창을 끄면서 번뜩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인공지능느님이 더 큰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일부러 헛발질을 한 건 아닐까? 자세히 살펴보면 퇴고와 퇴사, 그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① 명확한 목표 설정 

글의 방향을 검토하는 퇴고와 삶의 방향을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하는 퇴사. 명확한 목표가 없이 결단했다가는 글도, 인생도 산으로 간다. 뚜렷한 방향성 없이 중구난방으로 택했다가는 머지않은 미래의 나는 원치 않는 결과물을 안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② 전체적인 구성 검토

퇴고할 때도, 퇴사할 때도 제일 먼저 전체의 구성을 검토하는 게 중요하다. 논리적 흐름에 문제는 없는지, 불필요하게 내용이 중복되지 않는지, 주제와 벗어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글을 다시 손보듯 퇴사 후 커리어의 변화나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안정성이 깨질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③ 문장 및 단어 검토

퇴사도 퇴고도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퇴고할 때는 글을 읽을 독자가 있고, 퇴사할 때는 내 결정을 전달받을 회사 사람이 있다. 내 의견과 메시지를 상대에게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단어나 문장을 선택할 때는 신중히 해야 한다. 퇴고와 퇴사 모두 끝내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하는 동안 쓰는 단어와 문장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④ 다른 사람의 의견 구하기

이 단어를 쓸지 말지, 사직서를 낼지 말지 결정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은 결국 나다. 하지만 머리가 뜨거워져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일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이라면 퇴사도 퇴고도 주변 사람들의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글 또는 상황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⑤ 충분한 시간 할애하기

글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퇴고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퇴사! 둘 다 시간에 쫓겨 결정할 일은 아니다. 급한 마음에 성급하게 밥솥을 열면 설익은 밥이 나를 기다린다. 퇴사와 퇴고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검토하고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건 아닌지 검토해 봐야 한다.


계획에도 없던 인공지능의 오류에서 출발한 의식의 흐름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머지않아 인류를 지배할 거라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 분명 지능은 높아지겠지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고 그걸 이렇게 한 편의 글로 써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똑똑하고 부지런한 과학자들이 또 이 기술을 분석해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면 가능한 날도 오겠지만! 지금은 굳이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나는 일단 쓴다. 그냥 쓴다. 그리고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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